내 추억은 얼마?
- 이글은 2021년 7월 14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기사'입니다. -
얼마 전 미국 경매에서 닌텐도 게임 ‘슈퍼 마리오 64’ 미개봉 카트리지가 무려 우리 돈 17억 9천만 원에 낙찰되었다. 1996년에 공장에서 만들어진 정가 7만원도 채 되지 않던 게임 타이틀 한 개가 유럽의 ‘100년’도 더 된 ‘수제 바이올린’ 가격과 동일한 수준이라니!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미국 경매에서는 ‘레트로 게임’ 관련된 제품들이 이렇듯 상상을 초월한 가격에 낙찰되는 괴상한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패미컴 판 ‘슈퍼 마리오’가 7억 5천만 원, 역시 패미컴 판 ‘젤다의 전설’이 약 10억 원에 낙찰되는 등 레트로 마니아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레트로 게임뿐만이 아니다. 불과 20~30년밖에 되지 않은 ‘장난감’이 몇억원에 팔려나가고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들이 어떻게 이렇게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추억의 힘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 너무나도 즐겁게 했던 게임 하나가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것이다. 그 강력한 경험이 기억에서, 그 행복이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잊혔던 그 기억들이 회색빛 세상 속에 지친 내게 강제 소환되는 것일 수도 있다.
내 힘으로는 도무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던 그 시절, 게임 속 주인공은 내가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며 세계를 누비고 우주를 넘나들 수 있었고 악당을 물리쳐 영웅이 될 수 있었다.
바삐 게임기 콘트롤러를 움직이는 작은 열 개의 손가락. 그리고 무엇보다도 순간순간 모니터에 비치는 행복에 가득한 그 표정이 어른이 된 지금은 도무지 나타나지 않는다. 거울 앞에 서서 아무리 그 시절, 그 표정을 지어보려 해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돈의 힘을 빌리다...

그렇게 그 행복을 되찾아보려 결국 ‘돈의 힘’을 빌리게 된다. 그 시절보다 몇 배 또는 몇십 배나 되는 가격을 지불하고서라도 산다. 아무리 도달하려고 해도 도달할 수 없는 그 시절 행복의 높이에 닿아보고 싶어서, 느껴보고 싶어서, 그 ‘표정’을 짓고 싶어서... 말이다.
그렇게 값비싼 돈을 지불해서라도 ‘유년 시절의 행복’을 사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레트로’는 ‘프로포폴’ 같은 것이다. 결국은 매번 울리는 ‘당근마켓’의 알림음에 반사적으로 서둘러 스마트 폰의 잠금화면을 풀게 되고 ‘옥션’의 새로고침 버튼을 계속 누르는 지름신이 이끄는 길만 ‘좀비’처럼 따르는 삶을 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즉 ‘중독’에 빠지는 것이다.
돈의 힘은 처음에만 유효하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2009년,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어느 날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박살 나고 실의에 빠져 그렇게 한 시간쯤을 멍하니 있다가 옛 생각에 젖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레고’가 생각났다. 국딩시절 어머니가 생일선물로 사주신 ‘레고’ 그리고 그 레고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한 없이 행복한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한참을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추억을 현실로 소환하고 싶었고, 인터넷 검색 창에 ‘레고’를 입력했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2만원’어치 레고를 중고장터를 통해서 샀다. 30년 만에 만져보는 ‘레고’가 주는 행복은 엄청났다. 정말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10개의 병사와 2개의 기사. 어찌나 짜릿했는지 모른다. 그 12개의 작은 피겨를 가지고 몇 시간을 신기하게 가지고 놀았다.

2만원이 주는 행복이 이 정도라고?
그렇게 시작된 ‘레고’와의 사랑은 몇 년간 이어졌고 점점 더 ‘돈의 힘’에 의지하게 되었다. 동호회 사람들을 알게 되고, 교류하면서 전에는 몰랐던 ‘레고 명품?’에도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12개의 작은 피겨로 시작된 나의 추억여행은 나중에는 ‘모으는 것’으로 변질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같은 제품을 2개, 3개씩 사는 경우도 빈번했다. 하나는 가지고 놀고 하나는 전시하고 하나는 보관하고... 한심한 짓을 하고 있었다. 잘못 된 ‘학습효과’였다. ‘선수’들이 그렇게 하니까 나도 따라하는 거였다.
얼마 후 ‘뉴스’에서 ‘레고 재테크’ ‘레테크’라는 용어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레고를 사고팔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산 레고의 중고시세가 오를 때마다 어찌나 짜릿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반대로 팔았던 제품의 가격이 떡상하면 온종일 기분이 우울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레고’를 다 처분해 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책상 위에 몇 개의 피겨들만 남아있는 정도다. 어떤 이들은 지금도 셀 수 없이 많은 ‘레고’를 방안 가득 채워 넣은 사진을 커뮤니티에 올리며 은근히 찬양의 댓글을 유도한다.
만들어 보지도 않은 장난감, 어떤 걸 가졌는지도 모르지만, 점점 좁은 집에 무언가가 가득 채워져만 간다.(물론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레고 콜렉터’인 누군가 이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중에 어떤 게 20년 후에 천만 원짜리가 될지 모른다고 말이다.
나는 ‘레고’를 모으고 만들었던 그 몇 년간의 세월 중에서 초창기의 몇개월만 행복했던 것 같다. 그 후로는 1986년 그해 어머니가 선물해 주셨던 그 레고 시절과는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나를 발견해가며 혼란스러웠다.
‘돈의 힘’을 빌리다 보면 결국 사람들과 비교하게 되고 휘둘리게 되고 ‘가치’를 ‘시세’로 평가하게 된다. ‘레트로 문화’를 즐기면서 수없이 많은 콜렉터들을 만나봤다. 하지만 그중에서는 진정한 ‘콜렉터’로서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얼마 없었다. 다들 ‘동호회,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휩쓸리며 ‘초심’을 잃은 방황하는 ‘키덜트’만 넘쳐날 뿐이었다.
지금 내가 모으는 ‘콜렉션’에서 ‘댓글’과 ‘미래가치’를 거세해보라. 그래도 계속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진정한 콜렉터’다. ‘레트로 문화’가 ‘집착’이 아닌 ‘행복’이 되는 길은 굉장히 간단하다. ‘처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때론 너무 많은 것들이 ‘행복’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처음 단 한 개뿐이었을 때의 기쁨이 다 가시지 전에 두 개로 늘리지 말아라. 아무리 당근마켓에서 싸게 나온 아이템이 유혹하더라도 그냥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한 개에 집중해라. 두 번째 세 번째로 넘어갈 수 있을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넘어가라. 과도하게 쌓이는 것은 반드시 ‘집착’으로 바뀌게 된다,

‘콜렉터’의 캐릭터는 따로 있다고 생각해라. 우리는 그저 지친 일상에서 잠시 ‘레트로’를 통해 위로받으려고 하는 것일 뿐이다. ‘커뮤니티’의 시세에 내 추억의 가치를 대응하지 말아라.
행복해지기 위해 모으기 시작한 것이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경우를 종종 발견한다. 심지어 가정을 파탄 내기까지 한다.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면서 그 시절엔 절대 쓰지 못할 돈을 지불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 시절 내가 행복했던 것은 내가 가진 것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 단 하나뿐이었던 그 게임, 그 장난감, 그 만화책이 닳고 닳도록 가지고 놀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몇 년 전에 ‘레트로 게임’에 입문하면서 패미컴 카트리지를 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총 20개 정도를 모았다. 1989년 동생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5만원 주고 샀던 패미컴과 그때 샀던 패미컴 타이틀들, 그리고 그 시절엔 사고 싶었는데 못 샀던 것들 위주로 하나씩 모으고 있다. 당연히 어디 가서 명함도 내밀지 못할 콜렉션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들로 충분히 행복하다. 내 ‘행복의 가치’는 ‘시세’와 ‘댓글’에 좌우되지 않는다.

다시 처음 이야기를 꺼낸다. 미국에서 ‘슈퍼 마리오 64’가 17억 원에 팔린 것과 내 추억은 아무 상관이 없다. 그저 어느 돈 많은 콜렉터가 자신의 꿈을 이룬 것이리라. 레트로 문화는 ‘콜렉션 문화’가 아니라 ‘추억 문화’다 ‘돈의 힘’에 의지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고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몇만 원 몇십만 원만 있어도 행복해질 수 있다. 겁먹지 말아라. 비교하지 않고 자신에게만 솔직하다면 ....
지금은 사라진 그 시절의 그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이 목표라면....돈은 굳이 필요없다.(그래도 조금은 필요하다.)
혹시 지금도 장터에 매복해서 숨을 헐떡이고 있다면 ‘배가본드’의 명대사를 대신 읽어주고 싶다.

죽고 죽이는 나선에서, 나는 내려간다. 다케조, 지혈을 해줘, 살려줘...
이제는 그 지름신이 그리는 나선에서 내려와야 할 때. (나에게 하는 말이다.)

더 소중한 작은 시절의 추억을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