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상반기는 전년도에 개봉해서 장기 레이스로 들어간 ‘사랑과 영혼’의 무한 질주와 더불어 아카데미 7개 부문 수상에 빛났던 ‘늑대와 춤을’의 예상 밖의 선전이 크게 눈에 뜨였다.
그리고 7월 여름 시즌을 화끈하게 열었던 세기의 화제작. ‘터미네이터2’,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의 ‘SF 액션 블록버스터’의 왕좌에 좌정하고 있는 이 대작으로 인해 91년, 극장가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그럼 7월 이후 하반기에는 ‘영화의 신’이 어떤 마법으로 우리 관객들의 혼을 빼앗아 갔는지 확인해 보자.
# 나 홀로 집에
미국에서는 전년도 겨울에 개봉하여 크게 히트했던 ‘나 홀로 집에’가 뒤늦게 수입되어 91년 여름에야 국내에 개봉할 수 있었다. 시즌이 맞지 않아 큰 성공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대박 흥행몰이로 그해 최고의 가족 영화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
모두 알다시피 이 영화는 T.V 공중파 시절부터,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단 한해도 거르지 않고 방송되는 단골 ‘특선영화’로 유명하다. 가히 영화계의 ‘벚꽃엔딩’이라고 할 수 있다. 전설의 시작이었던 91년 이후 ‘나 홀로 집에’는 ‘프랜차이즈화’ 되었고 ‘맥컬리 컬킨’은 아역 배우 역대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며 전성기를 누린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가족영화 넘버원의 전설 ‘나 홀로 집에’는 당시에 무려 서울 관객 86만 명 동원이라는 믿기 힘든 놀라운 성적을 보여주며 뜨거운 여름 스크린 전쟁에서 ‘터미네이터2’와 함께 나란히 승리자 왕관을 쓰게 된다.
# 장군이 아들2
바로 1년 전 여름에 개봉했던 ‘장군의 아들’의 속편이었던 이 작품은 ‘터미네이터2’에 실질적으로 대항한 유일한 국내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였다.
‘터미네이터2’ 와 2주 간격으로 스크린에 걸리면서 1편 개봉 당시보다는 상대적으로 힘겨운 싸움을 했으나, 그해 서울 관객 35만 명을 동원했다. 이는 91년 국내 영화 개봉작 중 최고 성적이었으며, 그해 최종 흥행 순위에서도 10위권 내의 유일한 한국 영화였다.
# 분노의 역류
‘터미네이터2’와 ‘나 홀로 집에’가 휩쓸고 간 여름 시즌의 숨겨진 또 하나의 대작은 8월에 개봉한 ‘론 하워드’ 감독의 ‘분노의 역류’였다.
‘타워링’ 이후 최고의 재난 영화로 평가받았지만, 너무나 막강한 라인업들 속에서 고전한 불운한 영화였다. 특히 다음 해 열린 제6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노미네이트 된 3개 부문 상(시각효과상, 음향효과상, 음향상) 모두를 ‘터미네이터2’에게 빼앗기며 ‘영화의 신’에게 버림받은 영화로 기록된다.
사실 91년 여름 시즌에 개봉한 다른 영화들 모두 ‘터미네이터2’에게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봤지만, ‘분노의 역류’가 가장 큰 피해를 본 영화가 될 줄이야....
대작 ‘분노의 역류’는 서울 관객 16만 명을 동원하며 그해 순위권에서 멀어져 버렸다.
# 의적 로빈후드
‘91년 여름 스크린 전쟁’의 마지막 블록버스터는 당시 떠오르던 최고의 스타 배우 ‘케빈 코스트너’가 간판으로 나선 중세 액션 활극인 ‘로빈후드’였다.
‘케빈 코스트너’는 ‘늑대와 춤을’에서 이미 증명한 감독/배우로서의 능력에 더해, 오락성과 대중 친화적인 액션 연기까지 보여주어 ‘슈퍼맨’ 이미지를 구축했다. 91년 단 한 해 동안, ‘늑대와 춤을’ ‘로빈후드’ 그리고 ‘꿈의 구장’까지 모두 세 작품을 통해 그 ‘인기’를 증명하며 91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특히 이 영화에서 중요한 소재였던 ‘화살’이 특수 촬영을 통해 임팩트 있게 영상에 녹아 내려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주제가였던 ‘브라이언 아담스’의 ‘Everything I do. I do it for you’는 ‘라이처스 브라더스’의 ‘Unchained Melody’와 함께 가장 사랑받은 '팝송'으로 군림했다.
서울 관객 47만 명을 동원하며 치열한 91년 스크린 전쟁에서 최종 5위의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영화 역사상 수십 편에 달하는 ‘로빈 훗’ 관련 영화 중 아직도 최고의 ‘로빈 훗’ 영화로 손꼽힌다.
# 황비홍
91년 극장가가 낳은 가장 큰 이슈는 사실 이 영화 ‘황비홍’으로 보는 이도 많았다. 이 작품이 향후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아시아권 영화계에 미친 영향이 실로 엄청났기에 그 후폭풍으로 따지자면 ‘터미네이터2’에 못지않았다.
서울 관객 43만 명 동원이라는 당시 대중들에게 전혀 생소한 ‘이연걸’이라는 인물이 가져온 어마어마한 성적에 수입사를 포함하여 영화계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해 관객 동원 6위를 기록했으며 ‘성룡’의 ‘용형호제2’를 제치고 당당히 홍콩영화 전체 1위에 랭크되는 파란을 일으킨다.
이후 제작된 '속편'을 너도나도 수입하겠다고 나서는 통에 ‘황비홍2’의 몸값은 엄청나게 부풀어 올랐고 결국 국내에 수입되지 못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후에 ‘황비홍3’가 '황비홍2' 보다 먼저 수입되어 개봉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질 정도로 국내에서 ‘황비홍’이 가져온 후폭풍은 거셌다.
‘이연걸’은 이후 ‘동방불패’로 연달아 흥행의 아이콘이 되어 ‘80년대-소림사 시리즈’ 이후 제2의 전성기를 누리며 바쁜 90년대로 보내게 되었고, 홍콩영화는 이후 ‘쌍권총’ ‘도박’ ‘성룡’에 ‘황비홍’ ‘신무협’이라는 카드까지 더해 그야말로 아시아 영화계의 절대자가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 인어공주
우리나라 극장가에서 ‘91년’이 특별한 이유는 너무 많지만, 그 중에서도 바로 이 작품 ‘인어공주’의 국내 개봉은 그 특별함 중에서도 '군계일학'이다.
91년을 마무리하는 12월에 뒤늦게 개봉한 ‘인어공주’는 사실 미국에서는 2년 전인 89년에 개봉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지금이야 ‘디즈니’의 유명세가 애니메이션과 영화 전반에 걸쳐 대단하지만, 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극장가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영향력은 없다시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고전 동화를 리바이벌한 이 극장판 애니메이션 한편 때문에 ‘디즈니’의 입지는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국내에서도 이 작품은 ‘패밀리 애니메이션’의 시초가 되어 이후 이어지는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같은 명작들의 길잡이가 되었다.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마지막 보이스카웃’과 함께 크리스마스 시즌의 승리자로 군림한 ‘인어공주’는 서울 관객 43만 명을 동원하며 그해 흥행 순위에 당당히 7위에 랭크된다. 91년에 개봉한 영화 중 유일한 애니메이션 흥행작으로 기록되었으며 디즈니에서 만든 마지막 수작업 애니메이션이자 디즈니 르네상스 시대를 활짝 연 작품으로 3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디즈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문법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1991년
사실, 어느 때나 그 시대를 이끌고 이슈를 만든 작품들이 넘쳐날 터이지만, 1991년만큼 특별한 해는 손에 꼽는다.
위에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다음 해인 92년에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며 전 세계를 경악시킨 범죄 스릴러 영화 ‘양들의 침묵’도 91년에 개봉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꽤 선방해서 서울 관객 18만 명을 모으며 대활약을 했던 작품이며 두 주연 배우인 ‘안소니 홉킨스’와 ‘조디 포스터’의 소름 돋는 연기는 선을 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또한, 91년에는 한국영화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장군의 아들’ 시리즈로 “이제 우리 영화도 해볼 만하다”라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이후 ‘결혼 이야기’ ‘서편제’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한국 영화는 ‘쉬리’에서 그 포텐을 터트리게 된다. 그리고 지금 우리 영화의 저력은 아카데미가 인정했으니 말해 더 무엇 하겠나. 그런데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국민들이 우리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 시작한 계기가 된 작품이 바로 ‘장군의 아들’ 이라는 사실이다.
‘장군의 아들2’뿐 아이라 ‘사의 찬미’ 잃어버린 너‘ ’경마장 가는 길‘ ’젊은 날의 초상‘ 은마는 오지 않는다.’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같은 좋은 작품들이 모두 91년에 극장에서 개봉했고 모두 30위 권 안에 드는 좋은 성적을 기록한 굉장히 의미 있는 해였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재미있는 점도 있는데, 91년은 ‘속편 개봉의 해’로 기억된다는 것이다. 속편의 정석인 ‘터미네이터2’를 비롯하여 ‘용형호제2’ ‘장군의 아들2’가 모두 10위권 안의 좋은 흥행을 했고, ‘마네킨2’ ‘ 총알탄 사나이2’ ‘지존무상2’ ‘FX2’가 개봉하여 다들 10만 명 이상이나 그 주변을 맴도는 괜찮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또한, ‘개봉 시기’와 ‘배우’의 중요성이 유독 화제가 된 해이기도 했다. 91년 개봉 영화 중에서는 왜 대박을 쳤는지 이해하기 힘든 영화가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서울 관객 54만 명을 동원한 ‘마지막 보이스카웃’ 이었다.
영화의 재미나 완성도는 기대 이하였으나 ‘브루스 윌리스’라는 이미 국내에서는 ‘블루문 특급’ ‘다이하드’ 시리즈로 큰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던 배우의 출연과 겨울 시즌 유일한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라는 장점이 두드러져 정말 운 좋게 흥행 열차에 탑승한 케이스였다. 만약 여름 시즌에 개봉해서 낭패를 본 ‘분노의 역류’가 좀 늦게 개봉해서 이때 ‘마지막 보이스카웃’이랑 맞붙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30년 전에도 '인지도 있는 배우의 출연'과 ‘개봉 시즌’의 궁합은 극장용 영화의 흥행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였다.
최종적으로, 90년 겨울에 개봉했던 ‘사랑과 영혼’이 한국 극장 역사상 가장 큰 흥행을 하면서 91년까지 큰 영향을 미쳤고, 이렇게 시작된 ‘흥행 전쟁’ 속에서 ‘늑대와 춤을’ ‘터미네이터2’ ‘나 홀로 집에’ ‘황비홍’ ‘인어공주’ 같은 명작들이 관객들의 선택을 받았다.
너무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 보니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한 ‘대부3’ ‘분노의 역류’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흥행에 성공한 ‘사랑을 위하여’ ‘적과의 동침’에 출연한 ‘줄리아 로버츠’는 유일하게 존재감을 보여준 ‘여자 배우’로 기록된다.
‘딕 트레이시’나 ‘멤피스 벨’같은 마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도 개봉했던 한 해였음은 물론이고 ‘황비홍’으로 인해 ‘홍콩영화’의 스펙트럼이 더 넓어지면서 우리 극장가에서 그 지분을 더 공고히 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그해에는 정말 많은 영화들이 극장에서 치열하게 생존게임을 벌였다. ‘직배사’의 광폭 행보에 국내 수입사와 제작사는 긴장했고 ‘터미네이터2’ ‘토탈리콜’ 같은 작품들이 보여준 시각효과에 그저 끝을 알 수 없는 ‘갭’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 영화계의 ‘반전 영화’ 뺨치는 ‘진보’를 바라보며 "그 시절이 다 꿈만 같다..." 느끼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기록’은 ‘추억’이 된다.
- 이글은 2021년 7월 20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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