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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이런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소중한 날의 꿈’

기획

by RetroT 2023. 6. 18.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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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2021년 6월 28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기사'입니다. -

 

-60~90년대까지 20세기의 추억이 폭넓게 공존하는 아름다운 레트로 애니메이션

-배경의 미술에 있어서 역대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탁월한 작품

-언젠가는 반드시, 역주행의 전설이 될 ‘소중한 날의 꿈’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 티저 포스터

 

2011년 여름에 개봉한 ‘스튜디오: 연필로 명상하기’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이하 ’소꿈‘)은 ’애니메이션 마니아‘가 아니라면 아는 이가 드문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간 우리나라 장편 애니메이션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제목과도 같이 ’소중한 장면‘들을 수 없이 많이 품고 있는 보석 같은 수작이다.

 

이에 개봉 10주년을 맞이하여 ‘소중한 날의 꿈’을 ‘레트로 타임즈’만의 시선으로 찬찬히 들여다보려 한다.

 

‘소꿈’은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선 ‘포기’를 선택한 후 ‘삶’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며 살던 한 소녀가 하늘을 날고 싶은 한 소년과 서울에서 전학 온 다른 한 소녀를 만나면서 시작되는 성장 드라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게 흘러가는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한편의 아름다운 ‘문예영화’ 같다는 감상이 보통 관객들의 첫인상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뜯어놓고 보면 나름 배꼽 잡는 웃기는 장면들이 착한 등장인물들의 순수함 뒤에 도사리고? 있는 미스테리한 작품이다.

등장인물: 왼쪽부터 '오이랑' ' 김철수' '한수민'

 

한마디로 제목이나 첫 인상과는 달리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이라는 거다.

이 작품은 대충 만든 작품이 아니다. 대사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에 ‘순수하게 재미있고자’하는 의도가 곳곳에 숨어 있다. 단지 그걸 캐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잡을 때 열쇠를 만나 자물쇠가 열리듯 ‘재미의 케미’가 폭발하는 것이다.

 

이런 ‘소꿈’의 ‘재미’에 대한 의지는 시작부터 확인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이 시작하고 5분이 흘렀을 무렵 서울에서 온 ‘수민’이 전학 첫날 당차게? 급우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곡은 1981년도에 발표된 ‘김만수’의 ‘푸른 시절’이다. 잔잔한 ‘경음악’이 어울릴 것 같은 작품에 대한 첫인상 또는 선입견? 과는 달리 시작부터 무척 경쾌하게 달리며 '포스터'에서 보이던 '지루함'의 편견을 녹이기 시작한다.

김만수 앨범 표지 '1981'(푸른시절 수록)

 

그렇게 인트로 ‘시그널’ 격인 ‘푸른시절’과 함께 ‘소꿈’의 상상 초월 배경 작화의 미술 폭격이 시작된다. 70년대 우리나라 어느 시내와 마을 곳곳을 표현한 디테일과 색감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데 이런 미술 작업은  이전에 국내 그 어떤 애니메이션에서도 본 적 없는 놀라운 성과이자 그 자체로 재미의 충분한 요건이 되었다고 할 만한 상당한 레벨을 과시한다.

 

또한 인트로에선 그 시절 고교 생활의 면면이 쌓여 가는데,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 도중 쓰러지는 여고생의 모습은 기성세대 모두가 공감하는 포인트를 잘 집어낸, 작품에서 가장 웃기는 장면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인트로 장면중 캡쳐. '푸른시절'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여고 '조회' 장면, 여학생이 쓰러지는 모습

 

또한 의외로 착하게 배꼽 잡는 대사들의 향연이 곳곳에 뿌려지는데, 초반에는 이 작품이 대놓고 ‘개그물’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랑’이와 ‘철수’의 전파사에서의 대화, ‘철수’와 친구들의 대화 등 곳곳에 상당한 수준의 개그 센스?가 엿보인다.

 

하지만, ‘레트로 마니아’의 관점에서 역시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별처럼 쏟아지는 ‘추억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다. 60년대 생 이후의 세대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여러 가지 소품과 배경들이 정확히는 알 수 없어도... 왠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감성으로 다가와 잔잔한 감동과 따뜻함을 전해준다.

 

이제는 잊힌 시골 떡 방앗간의 모습과 그 옆에 서 있는 삼륜차, 70년대 읍내의 극장 모습과 인정 넘치는 동네의 풍경은 두고두고 다시 보고 싶어진다. 90년까지만 하더라도 서울 시내에서도 간혹 볼 수 있었던 약장수들의 ‘차력쇼’와 추억이 깃든 빵집의 모습 등... 다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볼거리로 가득 차 있는 작품으로, 처음 기대를? 훌쩍 넘어선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경암동 철길 마을’은 낭만이 가득한 모습으로 꾸며져서 등장하는데, 이처럼 영화에서나 간혹 보던 풍경들을 애니메이션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것도 새로운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중 '철길 풍경' 캡쳐

 

한국 애니메이션 '미술'의 격을 몇 단계나 올린 작품

 

이 작품 ‘소꿈’이 소환하는 추억의 미술 작화중 초반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몇 컷 소개한다.

작품중 지금은 잊힌 70년대 '여고생활' 모습들

 

지금은 단종되어 볼 수 없는 1969년도에 출시된 '기아'의 '용달 삼륜차-T600' 모델, 상단의 오른쪽에 백팩형 농약 분무기를 들고 있는 인물의 모습도 정겹다.

 

상단의 미술은 정말 정교하고 아름답다. 떡방앗간의 내부도 상당히 정감있게 표현되어있다.

 

마을 극장의 모습에선 레트로한 매력이 물씬 묻어난다.

 

주이공 '오이랑'과 '한수민'이 만나는 '레코드숍' 장면은 특히 디테일이 살아있는 미술의 퀄리티를 보여준다. 마지막에 '오이랑'이 엉겁결에 구입하는 '나훈아 골드' 장면이 압권의 재미를 선사한다.

 

'블란서 제과'의 디테일 또한 놀랍다. 극중 잠시 나오는 로타리 방식의 옛날 흑백 T.V와 외화 '원더우먼은 신경 쓰지 않고 보면 놓치기 쉽다.

 

'한수민'이 극장 포스터를 떼어가는 장면, 영화 '별들의 고향(1974)'의 포스터가 인상적이다.

 

'이랑'과 '철수'가 처음 대화하는 장소인 '우주 전파사'의 디테일도 놀랍기만 하다. 둘의 첫 대화는 이 작품 중 제일 웃긴 명장면이다.

 

너무나도 많은 놀라운 '미술'의 향연이 펼쳐지는 '소꿈'의 초반부에서 몇가지 장면들만 추려도 이정도로 많다.

 

이제 우리나라의 상업 애니메이션에서 '아날로그 2D' 작업 방식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아마도 이 작품이 마지막 아날로그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기록 될 것이다. 최소한의 디지틀 작업으로 완성된 그야말로 '장인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소꿈'.

우리에게 이런 작품이 있었다.

이 작품에선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재미를 주는 장면은 없다. 요즘 영화에서 순간순간 등장하는 일상화 된 거친 ‘욕’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게 ‘문학’적인 ‘삶’과 동떨어진 지금의 우리에게 ‘소꿈’은 수줍은 듯 다가와 이야기한다.

 

“꼭 그렇게 거칠고 꼭 그렇게 자극적이어야만 재미있다고 느끼는 걸까?” ...라고 말이다.

 

충분히 고민해 볼 만한 ‘질문’이라고 여겨진다. ‘추억’의 다른 이름이 ‘순수함’이었던가. ‘소꿈’은 그 원칙에 충실하다. 그것이 어떤 이에게는 지루함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필자에게는 ‘다름’으로 다가왔다.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는 이 ‘소꿈’이야말로 독특하다.

 

잊었던 것들을 다시 일깨워 주는 것에 대해 고마움이 느껴지는 이 작품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추억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일본 ‘아니메’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어쩌면 ‘트렌드’와는 동떨어진 작품일 수도 있겠다. 그걸 모두 부정하진 않지만, ‘선입견’은 때로 상당히 무섭다.

 

이 작품은 고상한 척만 하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정말로 ‘재미’있는데 ‘재미없는 척’ 보일 뿐이다. 우리의 ‘뇌’를 믿지 말고 ‘마음’을 믿고 봐야 할 작품이다.

 

욕을 하지 않고 굳이 자극적인 사건을 만들지 않고 그렇게 성장통 속에 자라는 아이들과 함께 일상을 재미있게 새끼줄처럼 엮은 ‘소꿈’에는 ‘추억의 순수함’과 나름의 선을 넘지 않는 즐거움이 있다.

 

지루한 교과서가 아니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이 작품은 ‘순수한 추억'을 미끼로 한 달콤한 유혹’이다.
포스터에 있는 순진한 얼굴들에 속지 말란 말이다.

 

 

- 이글은 2021년 6월 28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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