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2] '안재훈' 감독 그리고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벌써 10년

Retro 人

by RetroT 2023. 6. 18. 08:02

본문

- 이글은 2021년 7월 3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

 

국내를 떠나 외국에서 날개를 편 '소중한 날의 꿈'

기적과도 같은 5만 관객

'박신혜', '오연서' 우주 대스타의 등용문? '


인터뷰를 하기 전에도,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체감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국내 영화/극장 산업에서 ‘애니메이션’이 차지하는 부분이 극히 일부분이다 보니 전문가들이라 불리는 ‘평단’에서조차 이 작품의 ‘미술 수준’을 제대로 평가할 줄 아는 이가 없다. ‘실사 영화’를 주로 다루는 기자들의 두루뭉술한 ‘한 줄 평’으로 간단하게 ‘소꿈’의 10년 노력과 수 만장의 그림들이 쉬이 평가되는 것을 볼 때마다 ‘비극’이 따로 없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안재훈 감독’은 예의 그 평온한 자세를 유지한 채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안재훈 감독(사진, 연필로 명상하기)

 

 

나와 우리 스탭들은 우리나라에서 ‘소꿈’이 진지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으로 주눅 들거나 의기소침하지 않는다. ‘소꿈’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역사상 외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초청을 받는 작품 중 하나다. 개봉한 지 10년째이지만 아직도 ‘소꿈’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상영 중이다. 나 또한 이 작품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를 누비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애니메이션 문화가 발전한 많은 국가에서 ‘소꿈’을 사랑해주고 있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나라 팬들의 응원으로 인해 많은 감동을 받고, 또 기쁨을 느낀다.

 

몰랐던 부분이라 매우 흥미롭다(부끄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이야기다). 외국에서의 ‘소꿈’에 대한 반응 중 인상적이었던 일화가 있다면?

프랑스 ‘안시’에서 상영회가 끝난 후 ‘감독 사인회’를 통해 관객들과 직접 만나서 인사하고 그림을 그려준 적이 있었다. 그때 만난 한 여고생이 자신도 ‘이랑(극 중 여주인공)’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어서 작품에 몰입했다며 이틀간 진행된 상영회에 모두 참석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전혀 다른 곳, 생소한 문화권에서도 젊은이들은 같은 고민을 하며, 우리 작품에 공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날 그 학생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랑' -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 캡쳐

 

최근 몇 년간 우리는 한국인인 ‘BTS’가 던지는 메시지에 전 세계의 수 없이 많은 팬이 공감하며 함께 노래하고 또 울고 웃는 것을 보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우리 창작자들이 던지는 메시지가 의도치 않게 우리나라를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어떤 프랑스 할머니는 첫날 상영회에서 ‘소꿈’을 보고 나서 다음날 상영회에 본인 자비로 마을버스를 빌려, 동네 주민들을 데리고 와서 같이 관람을 하기도 했을 정도로 큰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어서 감동받았던 기억도 잊을 수 없다.


외국 관객들은 당연히 ‘자막’을 통해 작품을 이해해야만 할 텐데 우리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지?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가 웃는 포인트에서 웃고 우리가 찡할 때 같이 얼굴 표정이 변한다. 작품의 의도도 대부분 정확하게 파악한다. 시사회 당시 어느 한 평론가는 자막을 통해 단 1회를 관람했을 뿐인데도 ‘소꿈’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의 이해를 가지고 작품을 꿰뚫어 보는 통찰을 보여주어서 나를 소름 돋게 했던 기억도 난다.

 

세계적인 애니메이션계의 권위자들로부터 “소꿈을 통해 다른 나라를 흉내 낸 것이 아닌 대한민국과 한국인의 모습이 담겨있는 작품을 볼 수 있어 좋았다”라는 말과, “이 작품 안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시작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는 말에 정말 많은 격려와 위로를 받았었던 기억도 같이 떠오른다.

 

한국에서는 사실상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독과점으로 인해 관객들에게 보일 기회가 별로 없었던 ‘소꿈’이 아이러니하게도 외국의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에게는 사랑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어느 날은 독일에서 한 뭉치의 편지들이 온 적이 있었다. 독일 관객들이 상영회가 끝나고 감독에게 보내고 싶다며 직접 편지를 써서 부쳐온 것이었다. 이런 에피소드들이 너무 많아서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외국인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명작’이나 ‘인기작’은 운과 사람들의 선택에 의해서 만들어지기에 내가 어쩔 수 없다지만, 적어도 창작자라면 디테일과 노력으로 작품을 완성해 놓는 일까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를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 내가 세계 여러 나라의 상영관에서 부끄럽지 않게 감독 초청 석에 앉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작품이 명작이어서가 아니라 그 디테일과 노력이라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노력을 그들이 알아봐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소꿈’은 사실상 우리에게는 익숙한 옛날이야기라서 신선한 면이 없게 느껴지지만. 외국 관람객들에게는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 보는 한국의 70년대 청춘들의 이야기이고 풍경이기에 오히려 우리보다 더 큰 호기심과 관심이 가는 것 같다.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 캡쳐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한다는 것은 험난한 길을 걷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을 우리 스탭들은 모두 잘 안다. 그들에게 내가 “으쌰으쌰 열심히 일하자! 힘내자!”라고 백번 말하는 것보다 이렇게 외국에서 날아오는 응원과 의미 있는 평가들이 오히려 더 큰 격려와 동기부여가 된다.

그래서 그런 그들의 응원의 메시지들을 스튜디오에 걸어두고 우리가 한국 애니메이션 발전의 보이지 않는 한 축을 차지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각인하곤 한다.

 

지금 하는 이런 이야기들은 내 자랑이 아니고, 우리 스튜디오의 자랑이고 우리 작품의 자랑이다.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공동체 작업이다. 나는 지금 우리 식구들을 자랑하는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를 돌며 상영하고 있는 작품을 만들고 있는 우리 ‘스튜디오-연필로 명상하기’를 자랑하는 것이다.

 

역시나 기대했던 것처럼 ‘인터뷰’를 통해서 ‘소꿈’과 ‘스튜디오-연필로 명상하기’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아가는 여정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아름다운 글자인 ‘한글’이
‘비속어’ ‘욕설’로 얼룩진 콘텐츠 세상에서
소리 죽여 슬퍼하고 있다.

 

‘소꿈’은 비속어나 거친 욕설이 들어가 있지 않은 작품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왠지 지루할 거란 생각도 들지만, 그 안엔 재미를 주기 위한 깨알 같은 노력이 무수히 스며들어있다. 실제로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어쩌면 순진하게 생겨먹은 캐릭터들과 ‘소나기’스러운? 착한 제목이 전면에 포진된 것이 요즘 유저들?의 선택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단연코 지금 우리에게는 ‘소꿈’과도 같은 작품이 절실하다.

스튜디오 입구에 새겨진 문구


안 감독’은 말한다. 영상 중에 ‘자극적인 언어’ ‘욕설’등이 나오면 뇌에 자극이 되어 환기되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재미있게 인식하게 된다고.... 하지만 많은 창작집단이 그렇게 극단적인 즐거움만을 추구하기에 ‘소꿈’이 더욱 차별화될 수 있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누군가는 용기를 내서 남들이 하지 않는 일과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어야만 한다. 그것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문화 콘텐츠 부흥의 ‘열쇠’가 될 것이다.

사실 재미있지만, 순박한 가면 뒤에 숨은 ‘소꿈’의 정체?를 모르던 관객들과 더불어 10년 전 극장가의 상황은 더더욱 힘겹기만 했다. 그해 박스 오피스 1위를 달렸던 ‘트랜스포머 3’의 상영관 독점으로 인해 자리를 잃게 된 ‘소꿈’의 그 뒤 1년간의 숨겨진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작은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이었던 ‘소꿈’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상영관 독점에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힘없는 우리를 대신해서 뜻 있는 다른 감독님과 문체부에서도 상영의 기회를 달라며 항의를 해 보았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그때 느꼈다. 좋은 향이 나는 작품을 열심히 만드는 능력만큼이나, 그 작품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는 것을....

그렇게 달랑 며칠을 상영하고
개봉관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소꿈’에게 작은 기적이 펼쳐졌다. 

전국의 여러 작은 ‘독립상영관’에서 뜻을 모아 ‘소꿈’ 상영을 해주는 눈물 나는 따뜻한 응원을 경험한 것이었다. 또 일정 인원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극장 이외의 장소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제도인 ‘공동체 상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소꿈’은 1년 동안 전국을 돌면서 작은 상영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스튜디오 내부 방문객을 공간 사진


그렇게 지방의 독립 상영관과 마을 회관, 학교 강당에서 상영하는 ‘소꿈’을 보기 위해 먼 길을 찾아와준 관람객이 모두 5만 명이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흥행 실패작이었지만 나에겐 1,000만 관객과도 같은 5만 명이었고, 그렇게 국내 상영 기간 내내 뜨거운 감동이 보이지 않는 남은 995만 명의 관객석을 대신하여 충분히 감사했고 행복했다.

숫자를 잃은 대신, 역사를 얻었다.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가장 재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은 ‘배우’의 ‘목소리 연기’에 반감이 심하다. ‘전문 성우’영역을 침범하는 상도에 어긋난 행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사실상 실력의 차이도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배우’를 ‘목소리 연기’에 투입하게 된 배경과 그들과의 작업 비하인드가 궁금하다.

어떤 얄팍한? 의도를 가지고 ‘배우’를 기용한 것은 절대 아니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불이 꺼진 극장 안에 앉아서 잘 훈련된 ‘전문 성우’의 목소리를 들으면 왠지 자연스럽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실제로 여러 가지 테스트를 진행했다. ‘전문 성우’와 ‘배우’와 심지어 ‘일반인’의 목소리 연기까지 녹음하여 모니터링하며 어떤 목소리가 작품과 어울릴지 고민에 빠졌었다.

 

그리고 결국 주인공인 ‘이랑’역 목소리에 독특한 비음 섞인 톤이 너무 잘 맞아서 ‘박신혜’ 배우를 기용했다. 사실 당시에 ‘박신혜’ 배우보다 훨씬 잘 나가는? 유명 배우가 작품에 참여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이 오기도 했다. 하지만 배우의 인지도나 인기보다 작품과 목소리가 잘 맞는지 아닌지가 더 중요했다. 그렇게 ‘박신혜’ 배우에게 정식으로 ‘목소리 연기’를 제안했다.

 

“단순히 애니메이션 포트폴리오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임하지 말고 ‘작품’을 만든다는 각오로 참여할 수 있겠나?”라고 물었다. 그렇게 작업을 승낙한 ‘박신혜’ 배우는 무려 6개월 동안 진지하고 성실하게 녹음 작업에 임했다.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고 업계의 모두가 부러워하기도 했다. 보통 애니메이션의 목소리 녹음은 길게 해봤자 ‘일주일’ 정도 진행하기 때문이었다.

'이랑'역 '박신혜(사진: 솔트 Ent)', '수민'역 '오연서(사진:오연서 홈페이지)'

‘박신혜’가 그 일정을 정말 잘 따라왔나? 믿을 수 없다.

열정이 대단했다. 본인이 대본을 진지하게 연구했고 연습하면서 대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우리에게 어필하면 우리가 대사를 고치기도 했었고, 새로운 대사에 맞춰 그림을 다시 그리는 등, 다 함께 ‘녹음작업’이상의 노력을 했다. 큰 감동을 받았고 마음속으로 꼭 크게 성공했으면 하고 바랐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배우가 되었다.

 

‘소꿈’에 참여했던 ‘박신혜’ ‘오연서’ 이 둘은 지금 우주 대스타가 되어있다.

‘오연서’ 배우도 당시에 가수와 배우의 길에서 방황하던 시기였던 걸로 알고 있는데, 힘든 와중에도 정말 최선의 노력을 해 주었다. 정말 고마웠고 지금 잘되셔서 너무 기쁘다.



예정했던 시간을 훨씬 넘긴 ‘안재훈 감독’과의 인터뷰는 즐거운 드라이브 같았다. 하지만 스포츠카를 타고 뻥 뚫린 강변도로를 달리는 멋진 청춘남녀의 이미지가 아니라, 읍내로 가는 경운기 뒷자리의 앉아 수다 떠는 어린아이들같은 느낌이었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시종일관 신선 같은 표정과 포스를 풍기는 그는 2021년 여름 현재, 신작 ‘무녀도’, ‘살아오름’과의 마지막 씨름을 하고 있다. ‘레트로 타임즈’는 이 두 작품에 거는 기대가 상당하다. 귄위 있는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이미 수상을 하며 작품의 윤곽이 드러난 ‘무녀도-완전판’도 물론 기대되지만, ‘소꿈’의 연장 선상에서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살아오름’에 대한 기대가 훨씬 더 크다.

 

‘소꿈’이 과거 우리 이야기였다면 ‘살아오름’은 현재 우리 이야기이다. ‘소꿈’이 ‘아날로그 애니메이션’을 지향했다면 ‘살아오름’은 펜과 물감 대신 ‘컴퓨터 프로그램’을 캔버스 삼아 지금의 한국, 서울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연필로 명상하기’의 10년 진화의 기록 그 ‘액기스’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작품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사냥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확인할 수 있는, 모두가 바라보는 중요한 사냥터가 되어 줄 것이다.

'살아오름-천년의 동행' 포스터'

 

누군가는
‘순수함’이 ‘재미없음’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2011년, 펜과 종이로 만든 어느 한 장편 애니메이션 속에서 잉태한 우리네 70년대의 순수하고 가슴 뛰는 ‘청춘’들의 ‘꿈’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5만 명의 가슴 속에 뿌리를 내린채 자라나고 있다. 그때는 그 5만 개의 씨앗들이 작아서 보이지 않았지만, 10년, 20년이 지나 나무가 되고 숲을 이뤘을 때, 그제야 사람들은 그 그늘 아래에서 쉬면서 ‘씨앗’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제 10년 지났다. 좀 더 느긋하게 기다려보자.

아름답고 순수한 것이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는 날을...

 

 

 

- 이글은 2021년 7월 3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