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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대중문화의 연대별 경계선을 칼처럼 나눈 대박 사건들 (70년대~80년대) part.1

기획

by RetroT 2023. 6. 1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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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2021년 7월 17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기사'입니다. -

 

-쿠데타 군사정권의 민중 달래기식 자유화 정책 살포
-80년 12월 ‘컬러TV’ 방송 전격 실시
-81년 ‘문교부’의 ‘교복/두발 자유화’ 정책


 

우리는 가끔 사람들이 지나간 시대를 ‘70년대’, ‘80년대’라고 딱 잘라 말하면서 그 10년의 특성이 다른 10년과 확연히 다른 것처럼 말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레트로 마니아 사이에서도 그런 대화들이 자주 눈에 띈다. 예를 들어 대략 이런 식이다.

 

“그건 70년대 스타일이지, 80년대부터는 그런 영화 안 만들었어.”
“80년대에는 이런 음악이 대세였는데, 90년대부터 싹 다 사라졌지.”

물론, 시대를 10년 단위로 칼처럼 구분 짓는 것은 억지다. 1979년과 1980년의 문화가 갑자기 딴 세상처럼 달라질 리 만무하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우리나라의 경우, 시대를 구분하는 그 해를 기점으로 ‘대중문화’를 급변케 하는 커다란 이슈들이 있었다.

시대를 대표하는 '오디오 매체' 왼쪽부터 '턴테이블(70s)', '워크맨(80's)', 'CDP(90's)'

 

이 지면을 통해서 우리의 지난 시대들, 특히나 레트로 마니아들이 환장하는 70년대, 80년대, 90년대의 경계선에 도대체 어떤 문화적 지각변동이 있었는지와 그 시대만의 독특한 특징들이 무엇이었는지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짧고 굵은 레트로 상식 탑재의 시간이다.)

70년대 - 80년대

시각적으로 70년대와 80년대를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흑백’과 ‘컬러’다. 정확하게는 70년대뿐 아니라 그 이전 모두는 ‘흑백의 시대’라고 보면 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70년대는 사진도, 영상도 대개 ‘흑백’으로 되어있다.

 

그런 ‘흑백의 세상’은 정확하게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하게 ‘총천연색’으로 바뀐다. 이미 60년대부터 컬러T.V가 보급되었던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제5공화국(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 80년 12월에 전격적으로 컬러T.V 방송이 시작되었다. 다른 나라들보다 뒤늦게 찾아온 광명?이었지만 가속도는 엄청나서 기존의 흑백T.V는 빠르게 컬러T.V로 바뀌어 갔다.

'1971년' 부터 방영하여 '1984년'에 막을 내린 T.V 시리즈 '수사반장은 '흑백 T.V' 시절과 '컬러T.V' 시절을 모두 겪은 장수 드라마였다.

 

게다가 79년에 삼성은 국내 최초로 기계식 ‘VTR(Video Tape Recorder)’ 자체 제작에 성공했고 82년에는 드디어 전자식 ‘VTR’ 생산에도 성공하게 된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방송국에서 ‘컬러 방송’을 송출하기 시작하던 시기에 ‘VHS’를 위주로 한 ‘홈 비디오 시장’까지 함께 활짝 열린 것이다.

 

컬러T.V와 VTR(또는 VCR로 표기: 둘 다 ‘비디오 플레이어’라는 의미로 통용된다.)이 이끈 컬러 늦바람은 광풍이 되어 대중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80년대에 들어서 갑자기 세상이 총천연색이 된 것이다. 배우들은 더욱 좋은 화질과 컬러에 대응하기 위해 화장과 패션에 더욱 민감하게 되었고, 시청자들은 이런 그들에게 영향을 받으며 ‘대중문화’는 다채로워졌다.

국내 최초의 기계식 VTR,VCR (삼성: SV-7700, VHS 탑 로딩 방식을 채택한 세계 4번째 자체 제작 VTR, VCR이다.) 사진 출처: 국립중앙과학관 홈페이지

 

또한 ‘흑백사진’의 시대도 80년대에 들어와서는 급하게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컬러 사진’의 경우는 T.V보다 조금 빠르게 70년대 후반부터 촬영/현상되기 시작했지만, 확실히 대중화된 것은 80년대에 이르러서부터이다. ‘컬러T.V’로 인해 대중적인 정서가 완전히 ‘컬러’로 바뀌자 ‘사진’도 이런 무드를 빠르게 따라간 것이었다.

 

또한 대중문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청소년들에게도 일대 파란이 일어나는데, 바로 ‘교복 자율화’였다. 81년 당시에 ‘문교부’는 ‘중, 고등학생 교복 및 두발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고 시범 기간을 거쳐 82년도에 먼저 머리에서 교모가 사라지며 ‘두발 자유화’가 시작되었다. 이어서 83년 새 학기와 함께 100년을 이어오던 이 땅의 ‘검은 제복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일제’의 잔재로 여겨졌던 짧은 머리의 검은 원 버튼 교복, 그리고 단발의 세라복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이 시절까지는 가방은 멜 수 없고, 오직 들고 다니는 것만 허용되었다. 하지만 교모가 사라지고 교복 자율화가 시작되면서 드디어 멜 수 있는 학생용 가방이 전면적으로 허용된다.)

 

영화 ‘써니’는 이 시절 중, 고등학생의 자유로운 헤어스타일과 복장, 다양한 가방이 주는 전형적인 80년대의 비주얼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대중문화’에 민감한 젊은 세대에 불어 닥친 ‘자유’와 컬러T.V는 그렇게 80년대의 상징이 되었다.

70년대 후반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좌)', 80년대 중반의 여고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써니(우)
- 불과 몇년 사이에 학교 풍경은 180도로 달라졌다.

 

그리고 ‘80년대’는 ‘가요 약진의 시대였다.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가요’보다는 ‘팝송’이 더욱 ‘대중음악’에 가까웠지만, 77년도에 시작된 ‘MBC 대학가요제’로 인해 젊은 감성의 창작 가요가 대중음악으로 훅 들어오게 된다.(그 이전 까지는 '팝송'과 팝송을 우리말로 번안한 번안곡들이 상당히 인기 있었다.) 그렇게 70년대까지의 다소 단순하고 경직되었던 ‘포크’ ‘트로트’ 정서 위주의 가요들이 80년대에 들어서는 질적으로 수준이 높아졌고 장르도 훨씬 다양해졌다.

 

1980년 제4회 MBC 대학가요제의 은상 수상 곡인 그룹사운드 ‘마그마’의 ‘해야’는 70년대와 완전히 선을 긋는 사운드와 보컬로 대중을 충격에 빠트린다. 그렇게 ‘대학가요제’가 주도하는 창작 가요의 인기는 그 이전 세대의 가요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가졌다.

 

마그마 '해야' 앨범(1980)

 
그중에서도 ‘이문세’로 대표되는 한국형 ‘팝 발라드’ 음악의 태동과 '포크 음악계'의 계보를 잇는 '밴드 사운드'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80년대 중 후반에는 ‘신디싸이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한국형? ‘댄스음악’들이 등장하며 70년대와 결을 완전히 달리하게 된다.
 
그 외에도 많은 음악적인 도전과 발전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2007년에 발표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을 살펴보면 80년대에 발표된 음반이 31장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1위 85년 들국화, 2위 87년 유재하), 이를 통해서도 80년대 창작 가요의 수준이 얼마나 급격하게 높아지고 다양해졌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1위 들국화(1985년, 좌)와 2위 유재하(1987년, 우)

 

오디오 문화도 80년대에 들어와 확 바뀌게 된다. 79년에 일본 ‘소니’에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인 ‘워크맨’을 개발하여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자 ‘삼성’에서도 81년도에 ‘마이마이(mymy)’라는 브랜드를 내세우며 국내 최초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어서 ‘금성’에서는 ‘아하(a-ha)’ ‘대우’에서는 ‘요요(yoyo)’를 앞세워 시장의 파이를 키우게 된다.

 

70년대까지 음악은 집에서 조용히 ‘감상’하는 문화로 여겨졌었고, 매체는 주로 ‘LP’(Long Play Record의 약자로 국내에선 ’바이닐-Vinyl‘과 통상적으로 같은 의미로 쓰인다.)였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70년대까지 커다란 빛을 보지 못했던 ’카세트테이프‘가 ’워크맨 시대‘를 맞이하여 특히 젊은 층에서 주요 오디오 매체로 떠오르며 80년대의 액티브한 시대 이미지 형성에 크게 한몫하게 된다.

 

‘워크맨’과 더불어 짝을 이루는 패션 아이템으로 ‘청바지’를 빼놓을 수 없다. ‘교복 자율화’로 인해 갑자기 퇴출당한 ’교복‘의 자리를 꿰찬 것이 바로 ’청바지‘였는데. ’리바이스‘로 대표되던 ’청바지‘시장은 80년대에 들어서 전쟁터가 된다. ’조다쉬(Jordache)‘ ’리(Lee)’ ‘써지오 바렌테(Sergio Valente)같은 브랜드들이 젊은 층을 공략했고, 국내 최초로 청바지를 만들었던 ’뱅뱅‘(Bang Bang)도 바로 이 시기에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으며 청바지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한다.

80년대 젊은이들에게 최고의 인기 청바지 브랜드였던 '죠다쉬' 잡지 광고

 

또한 80년대에 들어서며 ‘덕후 문화’에도 큰 이슈가 생기게 된다. 70년대부터 서서히 형성된 우리나라의 ‘프라모델(Plastic Model)’ 시장은 주로 ‘밀리테리’를 중심으로 한 차량 등을 제작/판매하며 수요층을 넓혀갔다. 그런데 80년대에 들어서 ‘아카데미 과학사’가 일본 제품을 카피한 ‘아니메 로봇 제품’을 출시하면서 획기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수없이 많은 ‘프라모델’ 제조사가 생겨났고 너도나도 ‘로봇’과 SF를 기반으로 한 제품들을 쏟아내며 아이들의 주머니를 털어갔다. 덩달아 학교 앞 문방구는 학생들을 위한 학용품 판매보다 ‘장난감’ 판매가 주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점점 만물상으로 변화해 갔다.

1980년에 출시된 '아카데미'사의 프라모델 '칸담'(일본 '반다이'의 제품을 카피했다.)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Kompang21'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신군부-전두환 정권(제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정부에 의해 ‘대중문화’가 급하게 대변혁을 겪은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다. ‘쿠데타’ 정권에 대한 민중들의 반발을 달래기 위한 얕은 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통해 ‘대중문화’는 그 이전에 비해 크게 그리고 급하게 달라지고, 발전하게 된다. 대중문화에 대한 억압을 풀고 일정 부분 ‘자유’를 허락한 이 시기가 ‘80년대’의 시작과 맞물려 있기에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70년대’와 ‘80년대’에 대한 뚜렷하게 다른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서로 다른 '70년대'와 '80년대'일지라도 ‘독재-군사정권’에 저항한 '민중들의 궐기와 희생'은 30여년간 변함없이 이어져 갔다...

전두환(쿠데타 당시 80년, 좌) 이한열 열사(민주화 항쟁 당시 87년, 우)

 

 

To be continued

 

 

- 이글은 2021년 7월 17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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