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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 대중문화의 연대별 경계선을 칼처럼 나눈 대박 사건들 (80년대~90년대) part.3

기획

by RetroT 2023. 6. 19.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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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2021년 7월 23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기사'입니다. -

 

- 서울 메이저 극장에 걸린 최초의 직배 영화 '사랑과 영혼의 ' 대히트(90)
- '임권택' 감독의 액션활극 '장군의 아들' 흥행 성공, 시리즈화(90)
- 토탈리콜(90), 터미네이터(91) 등의 격이 다른 '블록버스터'의 등장
- 르네상스(88), 아이큐 점프(89), 소년 챔프(91), 댕기(91) 출간으로 본격 출판 만화 시대 개막
- 드래곤볼(89), 슬램덩크(92) 국내 정식 연재 시작
- 전자오락실의 게임 체인저 '스트리트 파이터2' 등장(91)
- 대우, 현대, 삼성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 진출(80년대말~90년대 초)


 

90년대 ‘영화계/극장가’도
시작부터 파란의 연속이었다.

88년 서울 올림픽과 함께 상영된 외화 ‘위험한 정사’를 선두로 ‘직배(직접 배급) 영화’의 시대가 도래한다. 이전까지의 외화는 국내 배급망을 통해야만 극장에서 상영이 가능했기에 외화의 수입을 어느 정도 자체적으로 필터링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정된 관련 영화법 규정에 따라 80년대 말부터 UIP(United International Pictures)를 포함한 직배사가 국내에 직접 자리를 펴게 된 것이다. 막강한 자본력을 자랑하는 할리우드 영화들의 위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90년 개봉한 '사랑과 영혼'은 서울 메이저 상영관에서 관객과 만난 본격적인 첫 직배 영화였다, 광고 상단에 'UIP' 로고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서울 메이저 극장에서 직배 영화가 본격적으로 상영을 시작한 것은 바로 90년 겨울  ‘사랑과 영혼’ 부터였다. 이 영화는 한국 극장 개봉 역사상 최대 관객을 끌어모으며 우려는 현실로 진하게 다가왔고 한국 영화/극장계는 원치 않는 체질 개선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 직배의 공포 속에서 기적 같은 사건이 벌어진다. 90년 여름에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이 국내 영화 사상 가장 큰 관객 동원을 하며 흥행에 대성공한 것이다. ‘멜로’,‘에로’ 일색이었던 국내 영화계에 ‘액션’으로 대성공한 영화가 나타나자 관객들은 “한국 영화도 이제는 극장에서 돈 주고 관람한다”라는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90년대의 한국 영화는 ‘장군의 아들’ 시리즈의 대성공으로 시작되었다.

'장군의 아들'(좌), '서편제' 상영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단성사 전경(우)

 

그리고 이어서 1993년 개봉한 ‘서편제’가 ‘단성사’ 단관 개봉으로 11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하며 또 한 번 모두를 놀라게 하는 이변으로 90년대 초반, 외화 일색의 극장가에 한 줄기 희망으로 자리했고 훗날 한국 영화 르네상스 시대의 초석을 닦게 된다.

 

또한 90년대에 들어서며 상상을 초월하는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 외화 히트작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사랑과 영혼(90)’, ‘토탈리콜(90)’, ‘늑대와 춤을(91)’, ‘터미네이터2(91)’같은 작품들로 인해 극장은 매일 매진행렬을 이루었다. 특히 ‘토탈리콜’과 ‘터미네이터2가 보여준 전혀 다른 차원의 ’특수 촬영 기술‘과 정교한 ’CG‘는 이전 시대의 오락 영화들에서는 전혀 보지 못한 경이로움을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90년에 개봉한 ’토탈리콜‘은 당시 기준 7천만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되어 국내외에서 큰 이슈를 낳았는데, 1년 도 안 되어서 최초의 1억 달러짜리 영화인 ’터미네이터2‘가 등장해서 모두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90년대에는 이렇듯 80년대와는 격이 다른  클라스의 돈 잔치가 헐리우드 영화계를 지배할 것임을 모두에게 천명하는 일종의 예고편과도 같은 영화들이었다.

터미네이터2 브로셔 스캔본(91)

 

그리고 당시 국내에서 소비되는 외화 중에 상당수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던 ‘홍콩 영화’에도 새바람이 불어 닥쳤다. 91년 개봉한 ‘황비홍’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다음 해에 개봉한 ‘동방불패’는 더 큰 인기를 끌며 ‘홍콩 영화’의 지분은 더욱 커져만 갔다. ‘서극’ 감독의 영향으로 인해 생겨난 ‘신 무협 영화’의 유행은 ‘왕가위’감독의 등장까지 이어졌다.

신 무협' 장르를 개척한 명작으로 평가받는 '동방불패' 포스터(92), 당시 서울 관객 기준 35만명을 기록하며 무려 '에이리언3'를 누르고 1992년 전체 흥행 랭킹 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90년대의 ‘덕후 문화’ 또한 초반부터 혁명적인 사건들로 분명한 색깔을 드러내며, 이 후 대중문화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80년대의 ‘덕후 문화’는 ‘전자오락실’과 ‘만화방’ 그리고 ‘문방구’ 이렇게 3가지로 요약된다.

 

그중에서도 ‘만화’는 동네마다 있었던 ‘만화방’에서 선배들 눈치 보며 즐기거나 ‘문방구’와 ‘서점’에서 판매하던 ‘만화 잡지’ ‘어린이 잡지’를 통해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아기공룡 둘리’와 ‘달려라 하니로’로 유명한 월간 만화 잡지 ‘보물섬’이 있었다.

 

드래곤볼 & 슬램덩크

 

하지만 82년 창간하여 80년대를 지배했던 ‘보물섬’은 정확히 89년 12월에 서울문화사의 만화잡지 ‘아이큐 점프’를 통해 정식 연재를 시작한 ‘드래곤볼(토리야마 아키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으며 이내 왕좌를 빼앗기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다.

아이큐 점프 창간호(88년), 드래곤볼 단행본 1권 표지(89년 정식 연재 시작)

그렇게 우리나라 90년대의 ‘덕후 문화’는 일본만화인 ‘드래곤볼’로 문을 열었고, ‘‘명랑만화’ 스타일의 ‘초등학생’을 타깃으로 한 만화 잡지와 수십 년간을 문방구와 서점에서 인기를 끌던 ‘어린이 잡지’들도 '보물섬' 과 ‘소년중앙’을 마지막으로 명맥이 끊기게 된다.

 

‘드래곤볼’을 등에 업고 ‘아이큐 점프’가 수십 만권씩 팔려나가자 출판사들은 너도,나도 일본 만화 연재 라이센스를 얻어서 ‘만화 잡지’들을 창간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아이큐 점프’와 함께 라이벌 구도를 유지하고 있는 ‘소년 챔프(91년 창간)’ 는 이 시기를 리드 한 또 하나의 만화 잡지로 유명하다.

 

특히 소년 챔프에서 연재를 시작한 ‘슬램덩크’는 단순히 ‘만화’를 넘어서 ’NBA’, ‘농구대잔치’, 드라마-마지막 승부‘, ‘나이키-에어조던’과 함께 ‘90년대 농구 문화’ 부흥을 이끈 선봉장 역할을 해내며 지금까지도 ‘농구 팬’과 ‘만화 마니아’ 모두에게 추앙받는 만화계의 레전드로 군림하고 있다.

그렇게 90년대의 시작은 ‘드래곤볼’을 필두로 한 일본 만화들과 이를 연재했던 ‘만화잡지’ 그리고 정식 연재를 하지 못했던 일본만화들의 불법 ‘해적판’이 난립하며 ‘대 출판 만화 전성시대’의 시기로 강력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르네상스, 댕기, 윙크

80년대의 ‘만화잡지’에는 ‘남성향, 여성향’을 따로 구분하는 시장성이 없었지만, 88년 11월 국내 최초의 순정만화 잡지 ‘르네상스’가 창간되며 드디어 ‘여성향 만화’가 시장성을 가지고 세분되어 팬덤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이런 ‘순정만화’ 시장은 90년대에 들어와 대폭발한다. 그 주역은 91년 11월에 창간된 격 주간 순정만화 잡지 ‘댕기’였다. 남학생들이 ‘아이큐 점프’와 ‘소년 챔프’를 구독하며 ‘덕심’을 키웠다면 여학생들은 ‘르네상스’, ‘댕기’, 그리고 93년에 창간한 ‘윙크’에 열광하며 그야말로 대한민국 덕후 문화는 ‘출판 만화’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었다.
우리나라 '순정만화' 최고 절정기의 명작들을 쏟아냈던 잡지 '댕기' 창간호(91)

 

당연히 이 시기, ‘판매용-출판만화’의 호황으로 동네마다 성행하던 ‘대여용’-만화방’ 문화는 서서히 힘을 잃게 되었고, 드디어 ‘덕후’들이 그토록 원했던 개인 소장용 ‘만화 단행본’ 시장이 만들어진다. 이전까지 만화는 ‘만화방’에서 빌려 보거나 월간 만화 잡지에 있는 것을 모아 보는 문화였지만,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덕후’들은 방 안 책상 위에 자신만의 '만화책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김혜린' 작가의 '테르미도르' 단행본, 최초의 순정만화 잡지 '르네상스'에서 출간한 소장용 단행본(91년 초판)

 

이 모든 변화가 올림픽 이후부터 불과 2~3년 만에 빠르게 진행되며 ‘90년대의 덕후’ 문화의 색깔을 분명하게 만들어 갔다.

그런데 이런 ‘출판 만화’의 급격한 대인기와 더불어 또 하나의 전혀 새로운 문화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Here Comes a New Challenger!

 

1991년 ‘전자오락실’에 ‘캡콤’사의 ‘스트리트 파이터2’ 가 등장한다.

Ryu & Ken, 스트리트 파이터2 게임 장면 캡쳐

 

감히 ‘전자오락’계의 ‘드래곤볼’ 출현이라 할 만했다. 이 게임으로 인해 국내 게임 유저들은 오락실을 벗어나지 못했고, 학생들의 성적은 지저세계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가히 혁명에 가까운 인기를 구가하며 80년대의 8bit 전자오락에 익숙했던 모두를 개종시킨 전지전능한 하나의 신앙으로 군림했던 ‘스트리트 파이터2’. 오락실 기계의 절반이 ‘스트리트 파이터2’로 채워진 것은 물론이고 모든  게임기에는 백 원짜리 동전이 항상 수복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뿐 아니라
‘홈 비디오 게임’의 빅뱅이 일어난 시기와도 묘하게 맞물린다.


1989년 ‘현대’는 일본의 ‘닌텐도’의 라이센스를 받아 ‘현대 컴보이’를 출시한다.  그리고 같은 해 ‘삼성’은 ‘세가’의 라이센스를 받아 ‘삼성 겜보이’를 출시하며 국내에서도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가정용 콘솔 게임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대우’가 MSX를 기반으로 한 ‘재믹스’를 선보이며 가정용 콘솔 게임 시장을 독식했지만, 경쟁사가 없었고 가격도 전혀 현실적이지 않아서 ‘대중문화’의 범주에 넣을 수 없던 시기였다.

 

그렇게,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우’ ‘현대’ ‘삼성’ 대기업 3사의 피 터지는 전쟁이 시작되었고, 정품보다 값싼 대만산 불법 카피 제품들까지 수입되면서 ‘비디오 게임’은 비로소 ‘대중문화’의 영역에 입성하여 ‘만화’와 더불어 ‘덕후 문화’의 양대 산맥을 이루게 된다.

삼성 '겜보이' 90년대 초반 지면 광고

그렇게 ‘스트리트 파이터2’로 인해 ‘폐인’이 된 이들은 집에서도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에 ‘가정용 게임기’를 욕망하는 자연스러운 프로세스를 거치게 되었다. 이처럼 90년대 초에 있었던 이 ‘비디오/아케이드 게임’ 문화 빅뱅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게임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씨앗’으로 심어졌다.

 

재미있게도 ‘출판만화’ 시장의 발전으로 ‘만화방’ 문화가 시들해진 것과는 다르게 ‘전자오락실(아케이드 게임)’ 문화는 ‘가정용 게임기’ 시장과 함께 90년대에 오히려 더욱 번창하여 학교 앞 거리에서 들리는 ‘뿅뿅’ 소리와 ‘오~류겐’ 소리의 데시벨은 더더욱 높아져만 갔다.

 

하지만, ‘문방구’ 한쪽 벽면을 전부 차지하던 ‘아카데미’ ‘아이디어’ ‘진양 과학’의 로봇들은 빠르게 ‘만화잡지’로 대체되어가며 ‘만화와 게임’의 시대에서 ‘프라모델’은 길을 잃어가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 이글은 2021년 7월 23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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