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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 대중문화의 연대별 경계선을 칼처럼 나눈 대박 사건들 (80년대~90년대) part.2

기획

by RetroT 2023. 6. 19.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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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2021년 7월 19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기사'입니다. -

 

- 독일통일(90), 소련 붕괴,(91)로 '냉전체제" 종식
- 블록버스터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방영(91), 트렌디 드라마 '질투' 방영(92)
- SBS 개국(91)
- 신승훈(91) 서태지(92)의 등장


 

1990년 10월 3일, 동-서 베를린은 이날 하나의 '베를린'으로 다시 태어났다.

 

1990년 무너진 베를린 장벽 사이로 서독과 동독이 다시 하나의 ‘독일’이 되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뒤이어 ‘소련(소비에트 연방)’도 무너지고, ‘모스크바’엔 자유의 상징인 ‘맥도날드’가 들어섰다.

 

이보다 조금 빠른 ‘88년’에 맥도날드가 입점한, 우리나라는 그해 개국 이후 최고의 이벤트인 ‘제24회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며 국운을 맥시멈까지 끌어올린다. 금상첨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그로 인해 얻은 자신감은 급기야 89년 ‘전 국민 해외여행 자유화’라는 화룡점정으로 꽃을 피우며, 그렇게 화려하게 ‘90년대’의 문이 열리게 된다.

80년대 - 90년대

90년대의 시각적 미디어는 80년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80년대의 연장 선상을 이어갔다. 실례로 4대3 사이즈의 ‘브라운관 컬러 T.V’가 그대로 이어졌고, 일본이 ‘LD(Laser Disc)’ 시대를 맞이한 것과는 다르게 우리나라는 변함없이 ‘VHS 홈 비디오’ 체제가 절정의 호황기를 맞이했다. 이렇듯 ‘하드웨어’적으로는 뚜렷한 차이점이 보이지 않았으나, ‘소프트웨어’적으로는 ‘개벽’ 수준의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1990년 MBC에서 방영을 시작한 ‘캠퍼스 청춘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이 인기를 끌며 ‘안방극장’의 코어 시청자 연령대가 낮춰지기 시작했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오프닝 캡쳐

그리고 다음 해인 1991년, MBC 창사 30주년을 기념하는 대작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가 방영된다. 이 드라마는 그 이전 세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최대 규모의 자본과 인력과 시간을 들여 제작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시청률, 작품성, 재미를 모두 끌어안은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30주년이 되는 올해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드라마로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MBC는 이 여세를 몰아서 다음 해인 92년 국내 최초의 트랜디 드라마로 언급되는 ‘질투’를 대성공시키며 ‘90년대 드라마’의 새 공식을 정립했고 80년대와는 완전히 다른 ‘신 드라마 시대’를 열게 된다.

드라마 '질투(1992)' 포스터

이전 시대의 드라마는 ‘전원일기’ 같이 가장을 중심으로 한 가족 드라마의 성격이 짙거나, 30대 이상의 기혼남녀가 극을 이끌며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시기 부터는 미혼의 20대, ‘젊은 세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트렌드에 민감한 감각적 영상을 추구하게 된다. 또한 ‘여명의 눈동자’ 같은 ‘블록버스터’ 기획 드라마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방송국에서 '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가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또한 소비의 주축인 젊은 층에 ‘드라마’의 장소와 패션 등이 영향을 미치며 문화를 넘어 경제에도 격랑이 번져갔다.

 

이런 트렌디함과 대작 지향성은 ‘마지막 승부’ ‘모래시계’ 같은 지금도 많은 이들이 추억하는 ‘한류의 씨앗’이 되는 90년대 초중반의 명작 드라마로 이어졌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안방극장의 가장 큰 이벤트는 바로
SBS의 개국이었다.

 

1991년, 최초의 민영 방송사인 ‘SBS (서울방송)’가 수도권 방송의 명분으로 ‘천하삼분지계’를 외치며 ‘KBS’와 ‘MBC’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게 된다. 수십 년간 단 두 개의 지상파 방송국만 존재했던 우리나라에서 드디어 ‘다양성’과 ‘경쟁’이라는 화두가 표출되며 본격 ‘방송국 삼국지’가 시작된 것이다.

1991년 11월 14일 창립된 'SBS'는 같은 해 12월 9일 개국 방송을 진행했다.

SBS는 외설 논란이 크게 일어서 종영했던 KBS의 심야 방송 ‘쟈니윤 쇼’를 ‘쟈니윤 이야기쇼(92년)’로 이어 나갔고 후에 ‘주병진 쇼(93년)’를 런칭하며 ‘토크쇼’ 문화를 정립시켰으며 독자적으로 ‘슈퍼모델 선발대회(92년)’를 주최하는 등 파상공세로 기존 양대 방송사를 긴장하게 했다.

 

이렇듯 MBC가 주도한 ‘트렌디/블록버스터 드라마’와 ‘SBS의 개국’으로 인해 90년대의 방송가는 시작부터 커다란 ‘변화’의 물결에 출렁였다.

개국방송엔 심지어 할리우드 배우 '해리슨 포드' '성룡'등 해외스타들의 축하 메세지도 등장했다.
 
90년대로 넘어가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은
또 한 분야는 바로 ‘음악계’였다.

1986년,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고해상도의 맑은 음질 구현이 가능한 CD (Compact Disc) 음반이 출시된다. 하지만, 초기에는 클래식, 가곡, 국악 등의 순수음악의 음반만 제작되었고 가요 CD 음반은 89년쯤이 되어서야 겨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90년대에 들어서며 CD는 빠르게 음악 매체의 중심에 서게 되고, 수십 년간 왕좌를 누렸던 LP의 수요는 급격하게 줄어가다 94년을 기점으로 사실상 사라진다. 그렇게 90년대는 CD와 카세트테이프의 투트랙 체제인 채로 음반 산업은 최고의 호황기를 맞이한다.

국내 최초의 CD 음반 '한국가곡 제1집, SKCD-C-0001' 커버(1986년 11월 12일)

 

80년대 가요계는 ‘조용필’, ‘이문세’ 등의 스타들도 배출했지만, '락', '블루스', '트로트' 등의 장르들이 다양하게 고루 나타나며 발전했다. 특히 ‘한글’만의 매력을 고급스럽게 살린 가사들은 지금까지도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이유가 될 정도로 탁월했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자마자 가요계는 80년대와의 사이에 또 하나의 굵은 선이 그어지는 지각변동을 겪게 된다.

88년 ‘대학가요제’를 통해 데뷔하여 80년대 말을 휘어잡았던 ‘무한궤도’의 ‘신해철’은 솔로로 전향하여 새 시대의 천재 뮤지션으로서 자신만의 팬덤을 만들었다. 또한 ‘무한궤도’의 남은 멤버들이 새로 결성한 ‘공일오비’는 90년 1집 앨범을 통해 ‘객원 가수’라는 전혀 생소한 시스템을 만들어 미디어의 도움 없이 청소년 팬덤을 만들었고 입소문과 ‘라디오 방송’만으로 ‘음반’을 팔아 치우며 새로움의 아이콘이 되었다.

'신해철'과 '공일오비'를 품었던 '88년 대학가요제' 우승팀 '무한궤도'의 데뷔앨범(89,좌)과 밀리언 셀링을 기록하며 단번에 '발라드 황제'로 등극한 '신승훈'의 데뷔앨범(90)

 

그리고 같은 해인 90년 말에 데뷔한 ‘신승훈’은 그 이전의 ‘이문세’와는 다른 방향의 발라드 문법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데뷔 앨범이 100만 장 셀링을 넘기는 초히트를 기록하며 우리나라 음반 시장은 새로운 부흥기에 접어든다.

 

Game Changer
서.태.지

하지만, 이 모든 새로움은 ‘서태지’라는 이름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지고 만다. 91년 ‘서태지’는 ‘이주노’, ‘양현석’과 함께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팀을 결성했고, 다음 해 3월에 데뷔 앨범을 발표한다. 대한민국 가요계를 1992년 이전과 이후로, 갈라놓은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랩, 댄스, 립싱크 등 이들은 전혀 다른 음악과 스타일로 청소년과 젊은 세대를 사로잡았고 방송에선 ‘댄스음악’이 급하게 주류로 치고 들어왔다. 다음 해에는 ‘듀스’가 나타났고 ‘힙합’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음악계 전체를 뒤흔들었던 문제작 '태지보이스' 1집 자켓(92)

 

‘서태지’가 주도한 랩과 댄스, ‘신승훈’의 발라드, ‘공일오비’와 ‘신해철’의 음악적 실험 정신 등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단 2~3년 만에 가요계의 지형을 밑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전부 바꾸어 놓았다, 90년대 초반의 ‘대중음악’은 시작부터 80년대와 완전히 달랐고 그 이후 90년대  뿐 아니라 세기말과 밀레니엄 이후까지의 모든 음악과 대중문화 전반에 큰 나비효과의 태풍을 가져온 임팩트 있는 날갯짓이 되었다.

 

그렇게 이 시절의 댄스음악들은 ‘한류 음악’의 모태가 되었지만 90년대 이후의 대중음악계에서 ‘트로트’ ‘락’ ‘블루스’ ‘포크’ ‘재즈’ 같은 단어들은 점점 더 희귀해져만 갔다...

 

To be continued

 

 

- 이글은 2021년 7월 19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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