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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은 가는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ㅇㅅㅅㄷ 아저씨

by RetroT 2023. 6. 1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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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2021년 1월 4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사설입니다. -

 

작년 여름, 압구정 근처를 운전하며 지나고 있을 때였다. 신호 대기 중이던 바로 내 앞 건널목을 건너는 그녀를 보자, 순간 시간이 정지했다.뒤 차의 거침없는 크락션 소리에 다시 현실 세계로 소환되기 전까지 분명 시간이 멈췄다...

배. 꼽. 티

'배꼽티(Crop top)'

그녀는 이른바 배꼽티를 입고 횡으로 운전자들의 시선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유유히 레드 카펫을 걷는 셀럽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를 뒤로하며 핸들을 잡은 내 머릿속은 30년 전 그날로 빠르게 돌아갔다.

 

 

땀에 젖은 촌스러운 교복을 빨리 벗고 싶은 한여름 고딩의 하굣길, 63-1 버스를 타고 무심코 차창 밖을 내다보았던 토요일 오후를 바로 어제처럼 똑똑히 기억한다.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서 신호가 걸렸고, 더위를 먹어 기가 빠진 채 손잡이에 겨우 손을 얹고 내 몸을 관성의 법칙에 이리저리 맡겼던 여느 날과 같을 뻔했던(하지만 전혀 달랐던)....

 

그날. 건널목을 천천히 건너는 아리따운 그녀가 입은 '상의'는 정확히 내 가방 속에 있는 해적판 만화책으로 가려질 만한 크기였다. 너무 작아서 가슴은 겨우 가려졌지만, 배꼽 아래로는 가릴 수 없었던 .... '배꼽티'

외국 영화에서나 볼까 싶었던 그 날 그녀의 움직임은 내 저장 장치 안에 슬로우 모션으로 영원히 각인되었다.

 

아무튼, 그녀의 배려? 덕에 나, 아니 어쩌면 그 차 안에 있던 우리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 하나씩을 얻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부터 청담동에서 자랐고 쭉 그 동네에 살았던 나였지만, 그 장면은 쾌나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충격은 서막에 불과했다.

 

오렌지족 야타족 그리고......... “엑스-세대”

 

그녀는 그녀들이 되었고, 그 후로 하의실종 패션부터 시작해서 별의별 희한한 신종 패션의 혼탕 속에서 , 나와 우리들은 90년대라는 시대의 선물 같은 젊은 시절을 보냈었다.

 

그렇게 나는 30여 년이나 지나 다시 그 배꼽티를 목격한 것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니  다시는 못 볼 것 같던 그 패션을 말이다. 그녀는 그렇게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왔다.

 

근 수년간 겨울이 되면 모두 똑같은 펭귄 같은 모습의 이른바 ‘롱패딩’의 젊은이들을 습관처럼 보아왔다. [아니 견뎌왔다.] 30년 전 우리 엑스 세대들보다도 못한 것 같은 개성 0점의 요즘 아이들을 보며 혀를 차던 나는 이제 패션의 유통기한이 지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다.

 

'레트로 시대' 또는 '뉴트로 시대'... 유행일까? .... 과감하게 답을 알려주겠다. [이 글 끝에서...]

 

2011년 개봉했던 영화 ‘써니’를 보고서 정말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었다. 내 선배들의 이야기, 내 유년 시절이었던 80년대의 추억으로 인해 한참을 웃으며 또 울었던 '써니'를 보던 그 날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이제 몇 개월 후면 그 ‘써니’가 개봉한 지 10주년이 되니 ... 말이다.

‘써니’는 우리나라 대중문화 산업에 처음으로 '레트로'라는 것을 거대한 담론으로 상차림 했던 1번 타자였다.


그리고 '응답하라”'시리즈가 시작되었고 5년 전 방영했던 시리즈의 최고 인기작인 ‘응답하라 1988’은 ‘전설’로 남게 되었다. [빨리 후속작을 보고 싶다.]

 

그 후로도 ‘레트로 추억 영화’는 쏟아져 내렸고, 대부분 기본 빵을 하며 안정적인 팬덤을 확보하고 있다. 계속되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1995년을 배경으로 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무려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대히트를 기록했고, 박스 오피스 1위 바통을 이어받았던 ‘이웃사촌’도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드라마를 넘어 T.V 예능 등 ‘써니’ 이후로 ‘레트로’는 그저 짧은 유행이 아니라 거대한 장르화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색다른 방식으로 ‘레트로 상품’이 출시되어 ‘레트로 바람’을 이어가고 있다. 아니 미친 듯이 증폭시키고 있다.

 

전통의 밀가루 브랜드 곰표와 콜라보를 진행한 패션 브랜드 4XR의 “곰표 패딩”은 이른바 “인싸” 아이템이 되었고 이어지는 전통 브랜드들의 영역을 가리지 않는 “콜라보레이션”은 “레트로”를 힙한 “문화”로 만들어 가고 있다.

레트로인[Retro 人]

장르화된 “레트로”는 어느새 빽빽한 주택가에 틈을 비집고 들어가 집을 지어 버렸고, 그곳에 눈치 보며 세 들어 살던 사람들은 점차 계약이 연장되어 영주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제 “레트로인”들은 이곳 대한민국의 빌딩 숲 어딘가에 자신만의 영역을 가지게 된 것이다.

 

 

작년에 빌보드 1위를 차지한 BTS의 다이너마이트는 ‘레트로’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비주얼로 MV 컨셉을 잡았었고 세계 최고의 그들이 준비한 시즌 그리팅 2021은 대놓고 우리네 쌈마이 복고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BTS와 메이저씬이 그러할진대, 마이너는 어떨까? 몇 년 전부터 유튜브를 중심으로 ‘시티팝’이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선 힙한 음악이다. 8090년대 호황기를 경험해 본 적 없는 젊은이들이 환상의 섬처럼 찾아 듣고 있는 시티팝 중 상당수는 내가 국딩, 중딩 시절 들었던 우리 가요나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곡들이었다.


그 시절에 들었던 음악에 열광하는 지금의 10대 20대의 모습은 10년 전 '써니'를 통해 시작되었던 ‘레트로 담론’과는 분명히 차이가 난다.
이제 ‘레트로’는 단지 예전을 추억하는 센티한 정서가 아니다. '노스탤지어'라는 감성적인 단어로 포장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 ‘레트로’는 ‘트렌드’와 교집합을 이루며 변태했다. 소위 ‘힙하다’라는 수식어를 대동하면서 말이다....


70년대 검정 교복 시절의 흑백 추억에서 80년대 교복 자율화 시절의 컬러풀한 추억을 지나 이제 대세는 엑스 세대들의 젊음이 녹아있는 90년대로까지 이미 광범위하게 불붙어있다.

 

얼마 전 20대들이 그들의 유년 시절을 이야기하는 유튜브 채널을 발견했다. 2002년 월드컵 시절을 추억하며 감상에 젖는 그들의 대화 속에서 웃어야 할지 진지하게 관찰해야 할지를 헷갈린 적이 있었다.

 

"그래.... 이 친구들에게는 2000년대 초반도 레트로구나!"


그때까지도 아직 VHS 비디오 대여점이 있었고, 4 대 3 비율의 커다란 몸집의 T.V가 있었으니 감상에 젖을만하구나.... [워크맨은 모르겠지만..]

 

추억하는 것이 ‘문화’가 된다는 것.

추억하는 ‘장르’가 생겼다는 것.

 

자 이 긴 글을 결론이다. [드디어.] 새해가 되면 BTS 같은 글로벌 K-Pop 가수의 레트로 컨셉 음악은 더 이상 힙한 느낌이 없어서 접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곰표 패딩보다 더 힙한 레트로 콜라보 상품도 어쩌면 더 보기 힘들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2020년 작년이 ‘레트로’의 정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도래한 분명한 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추억하는 것이 ‘문화’가 된다는 것. 추억하는 ‘장르’가 생겼다는 것. 그것으로 인해 웃고 울고 즐거워한다는 것 이 현상이 10년 동안 충분히 모두에게 ‘학습’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현재’를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당신은 찾게 될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내는 월세처럼, 삶 속에 수없이 뿌려진 ‘추억 트리거’를 건드릴 때마다... 미디어는 눈과 귀를 통해 당신에게 ‘추억’을 ‘콘텐츠화’ ‘상품화’해서 보여줄 것이고 당신은 필요한 때에 자연스럽게 그것에 동화될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하루에 한 번일 수도 있다.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현재만 살 것이라고?..... 정말? 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이 아무리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더라도 학창 시절의 졸업앨범은 버리지 않는 것처럼, 당신 집 어딘가에 추억은 숨어서 살아있는 것처럼, 이제 ‘레트로 문화’는 장르화 되어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생산되고 소비될 것이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 그리고 이제 시작된 2000년대의 레트로는 또 어떤 모습일까?

레트로는 유행이 아니다.

레트로는 삶의 일부분이다. '어제'가 '내일'만큼 절실하진 않지만, 그보다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세월이라는 개인 교사를 통해 학습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다른 이의 남편이자 아내일 첫사랑과 함께 봤던 그 영화가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싶은가? 어린 시절 재미있게 봤던 그 만화책이 복간된다는 소식을 놓치고 싶지 않은가? 학창 시절 장기자랑 시간에 쪽팔림을 무릅쓰고 불렀던 그 노래의 Remake 음반에 펀딩 하고 싶은가? 아직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존재한다고 믿었던 시절에 받았던 그 장난감이 중고시장에서 얼마까지 올랐는지 궁금한가?


이제 그런 소식들을 빠짐없이 모아서 추억의 향연을 벌이고자 ‘엑스세대 아저씨’가 사이버 공간에 돗자리를 폈다.

레트로 타임즈(Retro-Times)

례트로 타임즈... [Retro-Times.co.kr]
보시다시피 중학교 영어 실력이라면 타이핑할 수 있는 게 어렵지 않은 도메인 주소다. 물론 ‘즐겨찾기’하면 더할 나위 없이 편할 텐데 말이다.

 

나름 꽤 그럴듯한 레트로 카페를 운영하던 ‘엑스세대 아저씨’가 코로나로 인해 손님 없는 가게 안에서 노트북을 켜고 레트로 마니아 친구들과 함께 써가는 뉴스와 잡담들 속에서 추억이 주는 작은 행복을 느껴보길 바란다.

 

감사한다. 팬데믹 덕분에 할 일이 없어서 이걸 시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Who Knows? 누가 알겠는가?"


언젠가 고품질의 추억 콘텐츠 ‘레트로 타임즈’ 기사가 포탈 메인에 걸리게 될는지 말이다. 나도 1년 전에는 가게에서 이런 글을 쓰게 될지 몰랐으니까...

흑백사진의 매력은 단순한 2가지 색이 주는 강한 몰입감의 임팩트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단순함을 다시 컬러로 복원하면 그 매력이 반감되리라 생각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렇게 추억을 재해석해서 "뉴트로"라는 이름으로 자신들만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렇게 나도 ‘레트로’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고 있다. 추억은 활어[活魚]다. 아주 팔딱팔딱 생생하게 살아있다.
나름대로 생존을 위해 영리하게 숨 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당신을 위해 그 섬세하고 디테일한 ‘추억’을 산 채로 잡아 식탁에 올려드리리다.
그저 맛있게 드시라.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 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 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다닌다

북북서진하는 기러기 떼를 세어보는데 젖은 눈에서 눈물 떨어진다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 이문재 “소금창고” -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인사 끝.

레트로 타임즈 발행인 "ㅇㅅㅅㄷ 아저씨-송창훈"

 

- 이글은 2021년 1월 4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사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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