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글은 2021년 8월 24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기사'입니다. -
사실상 우리나라의 세기말 대중문화 개벽은 ‘정부’가 깔아놓은 판 위에서 시작되었다. ‘일본 대중문화개방’과 함께 지금도 많은 이에게 회자되는 역사에 길이 남을 큰 한방.
우리의 미래 먹거리는 IT에 있다.
‘김대중’이 이끄는 ‘국민의 정부’는 취임과 함께 세상에 없던 ‘전자정부’를 천명하며 가 보지 못한 세계로 국민을 이끌었다. 바야흐로 ‘지식정보화시대’의 시작, ‘국가 부도’와 함께 찾아온 위기의 ‘세기말’을 ‘기회’로 바꿀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窮卽變 變卽通 通卽久(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궁하면 변화해야 하고, 변하면 통할 것이며, 통하면 오래갈 것이다. ‘주역’에 실린 이 고언이 적중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그 시절 우리나라에 있었다.
1998년 6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세계 최초의 초고속 인터넷 상용화 국가’라는 타이틀 이상의 의미를 지닌 세기말 혁명이었다. 이때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가 태평양을 건너 코리아에서 잭팟을 터트린다. 그에 질세라 우리나라에서도 순정만화 ‘리니지’의 세계관을 차용한 온라인 게임 ‘리니지’가 폐인을 양산하며 돌풍을 일으킨다. 이렇게 초고속 인터넷이라는 접시 위에 ‘스타 크래프트’와 ‘리니지’라는 음식이 담겨 우리 고유? 의 세기말 요리인 ‘PC방 문화’가 탄생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인터넷 인프라로 인해 관련된 ‘스타트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사라지는 춘추전국 시대를 맞이했지만, ‘PC방’이라는 절대적 문화 공간은 그 후로도 계속 발전해 나가며 우리 삶의 일부가 된다.
우리 ‘대중음악계’의 ‘세기말’은 다른 분야보다 조금 일찍 찾아왔다. 1996년 그해 겨울 ‘H.O.T’의‘캔디’로 인해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90년대 대중음악의 판도를 ‘댄스’로 바꾸어 버린 ‘서태지’ 신드롬 조차 잠재워 버린 ‘H.O.T’가 가져온 ‘세기말 트렌드’인 ‘댄스 아이돌 붐’은 ‘SM’을 필두로 하는 ‘대형 음반 기획/제작사’의 등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바야흐로 K-Pop 시대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아이돌’은 학생들에게 ‘삶의 원동력이자 탈출구’가 돼주었다. 회색빛 현실에 ‘대중음악’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유희’였고 T.V를 통해 그들의 춤, 노래, 패션 그리고 환상이 퍼져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1997년, 라이벌 구도를 이루는 ‘젝스키스’가 데뷔했고, 1999년 god가 데뷔한다. 메이저 남돌과 더불어 여돌의 인기도 만만치 않았다. 1997년 걸그룹의 시조새인 ‘S.E.S’가 데뷔하고, 다음 해엔 ‘핑클’이 데뷔하며 세상은 ‘아이돌판’이 되어갔다.
이렇듯 ‘가요계’의 세기말은 철저한 기획으로 훈련된 ‘아이돌 그룹’의 시대로 완전히 물들게 된다. 하지만 교복을 입고 ‘오빠’와 ‘누나’를 외치며 열광하던 철없는 ‘학생’들과는 달리, ‘국가 부도’ 상태의 혼란스러운 세기말, 삶의 무게를 오롯이 견뎌내야만 했던 20대 청춘들은 새로 떠오른 ‘홍대’를 중심으로 한 ‘언더그라운드 문화’에서 위로를 얻게 된다.
1998년 발표된 홍대의 펑크락 밴드 ‘크라잉넛’의 히트곡 ‘말달리자’가 홍대를 넘어 반도 전체에 울려 퍼진다. 96년부터 시작된 홍대의 라이브 클럽을 중심으로 한 인디 뮤지션들의 존재감이 대중들에게 드러난 것이 바로 이 시기부터다. 대중문화의 문턱에까지 가까이 다가온 ‘홍대 언더그라운드’ 문화는 이후 ‘밴드’를 중심으로 마니아층을 만들어갔으나 ‘대중문화’라고 불리기에는 시장성이나 인프라가 미약했다. 당시 세기말과 함께 찾아온 ‘B급 문화’ 붐의 한 축을 담당했던 세기말 ‘한국 인디즈’의 공로자로는 ‘자우림’, ‘델리 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노브레인’ 등이 있었다.
97년에 국내에 개봉하여 ‘저질 B급 감성’ 코드를 유행시켰던 영화 ‘트레인스포팅’은 출구 없는 세기말 청춘들의 삶을 적나라하고 유쾌하게 드러냈다. 이 당시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 트렌디한 ‘엑스세대’ 스타일에 열광하지 않았고 오히려 ‘No.3’의 삼류 건달 ‘송강호’와 뇌가 없는 밴드가 부르짖는 ‘조선 펑크’의 가사에 감정을 이입했다. H.O.T가 가요계를 휩쓸었지만, PC통신에서는 ‘조PD’와 ‘드렁큰타이거’가 ‘힙합’의 전도사로 대활약하는 시대이기도 했다.
‘인터넷’이라는 ‘야생마’가 거침없이 전달하는 정보로 인해 ‘대중문화’는 팔딱팔딱 변화무쌍하게 뛰어다니며 ‘궁즉변’ 했던 것이다. 그렇게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2002년 월드컵의 영광을 꿈꿀 수 있었다.
흑백으로 잔잔했던 70년대를 지나 컬러로 넘실댔던 80년대. ‘대중문화’가 더 이상 싸구려가 아닌 삶을 풍부하게 하는 순기능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90년대 그리고 ‘초고속 인터넷’으로 ‘위기’ 속에서 ‘변화와 행복’을 찾은 세기말.
그렇게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는 발전했고, 이제 세계를 누비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K-pop이 파란 눈과 노란 머리를 한 그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기적’ 같은 일들의 뿌리에는 90년대/세기말의 ‘궁즉변 변즉통’이 있었다.
‘팬데믹’으로 많은 이들이 삶과 죽음의 고비에서 괴로워하고 있지만, IMF를 3년 8개월 만에 졸업한 우리 민족의 저력을 기억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Retro 정서’의 순기능일 것이다. ‘금 모으기’를 통해서 세상을 감동케 하며 IMF 구제금융의 사슬에서 벗어난 지 딱 20년이 되는 지금. 우리는 ‘궁즉변 변즉통’하고 있는지 고민해 볼 일이다. 힘든 시기에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루저’의 ‘자위’가 아니라 ‘궁즉변’하기 위함이다.
5차례에 걸쳐 진행한 우리 대중문화의 급격하고 큰 변화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팬데믹’으로 주춤한 모두에게 진정한 ‘대중문화시대’의 미래를 먼저 보았던 이의 한마디를 전하고자 한다.
“이 국민이라면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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