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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한 기대는 늘 처절함을 남긴다. 실사화 '카우보이비밥'이 새겨버린 상흔

기획

by RetroT 2023. 6. 19.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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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2022년 1월 25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기사'입니다. -

 

 

© 드라마 '카우보이 비밥' 포스터

 

“이번에는 제발”
몇 번이고 돌려봤던 실사영화 ‘바람의 검심’의 재생 버튼을 누르며 재차 기원해보았다. 다섯 손가락 내로 꼽을 정도로 강력 추천하는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의 실사화 소식을 듣고 난 이후의 모습이다.

 

‘카우보이 비밥’은 1970년대 미국 액션 영화와 80년대 일본 탐정 드라마의 특징적 감성을 살려낸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현상금 사냥꾼 ‘스파이크 스피겔’과 그의 동료들이 그려내는 액션 누와르 작품이다. 

 

무거운 누와르에서 코미디를 방불케 하는 에피소드며 일상적 공감까지 다양한 모습을 그리는 것이 이 작품의 묘미라면 묘미. ‘카우보이 비밥’은 대체로 단편 에피소드로 이어지면서도 전체의 큰 맥락을 놓치지 않는데, 그럴싸한 교훈적 메시지를 던지기보다는 마초적 남성향의 로망을 그려내고 있어 더 매력적이다. 

©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 이미지 컷

 

씨네21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완성도로 따지자면 ‘카우보이 비밥’은 그 무엇도 감히 따르기 힘든 하나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 그 완성도에 끌려 보기 시작하면, 이내 중독되어버린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의 애니메이션과는 확연히 다른 질감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으며 치밀하고 완성도 높은 작화와 세련된 각본, 하드보일드 풍의 세계관은 대중을 충분히 매료시킬 만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벽하다고 평가되는 많은 요인에도 불구하고 ‘카우보이 비밥’의 가장 큰 강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음악’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마도 ‘카우보이 비밥’의 골수팬을 양성한 것 역시 작품의 OST의 영향이 크다. 

 

실제로 감독 와타나베 신이치로 역시도 음악 덕분에 작품이 인기를 끈 것 같다고 직접 말할 정도였고,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공중파 방송 3사에서도 오프닝 곡인 ‘Tank!’ 등의 음악을 질리도록 써먹고 있다. 특히 OST 중 'The Egg and I’는 제일제당이 CJ로 사명을 바꾸는 것을 세상에 알린 첫 광고 영상의 BGM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국어 OST로 제작된 ‘Alone’은 가수 박완규가 맡아 부르며 그의 명곡 리스트를 이어간 사례기도 하다.

가수 박완규는 작품의 OST 'Alone'을 불렀다.

 

그런 ‘카우보이 비밥’이 드디어 실사화가 된다고 한다. 루머로 떠돌던 ‘키아누 리브스 주인공 설’을 과감히 깨부수고 한국계 배우 ‘존 조’가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는 소식은 나의 기대감을 한껏 부풀려버리고 말았다. 더군다나 매트릭스로 유명한 워쇼스키 감독이 스스로 ‘팬’을 자청해왔기에 이번 작품의 감독은 과연 얼마나 뛰어난 실력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커졌다. 

 

그러던 2019년, 주인공 역을 맡은 ‘존 조’가 무릎 부상을 당해 수술과 재활로 작품 제작이 무기한 중단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다. 아주 잠시였지만,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을 느낀 후 배우의 쾌유를 빌며 다시 제작이 완료될 날을 기다렸고 넷플릭스에서 작품이 공개되었다는 알림이 울렸다. 즉시 폰을 꺼내 들어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들나는 1화도 다 감상하지 못하고 한구을 내쉬었다. 그나마 그동안의 갈망과 애정이 있었기에 절반을 좀 넘은 지점까지는 도달할 수 있었다.

 

고백하건대 '끔찍하다'는 말 외에는 당시의 좌절감을 표현할 도리가 없었다. ‘드래곤볼 레볼루션’이나 ‘디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입을 닫았다. 더 큰 불만을 내뱉으면 이 작품의 원작이 그 명작이라는 사실을 인정해버리는 것 같았기에.

 

그러나 이런 마음은 비단 나만의 독단은 아닌듯 싶다. 평론가 박정환은 ‘총체적 난국’이라고 표현하며 “올해 감상한 드라마 중에서 최악의 퀄리티였다”는 의견을 전했다. 전 세계적인 혹평에 넷플릭스도 두손 두발 들었다. 방영 한 달도 채 되기 전에 시즌2 제작을 완전히 취소해버린 것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내에 향후 시즌 제작안을 폐기한 사례는 극히 이례적인 수준이라 설명했다.

그렇다면 업계에 종사하며, 레트로 문화의 선두주자를 달리는 매니아들이 생각하는 작품은 과연 어떤 의견일까?

놀랍게도, 실사화 작품을 본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였다.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이들은 애초에 작품의 예고편만 보고도 시청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투철했다는 사실. 어렵사리 몇몇 관계자에게 작품에 대한 평을 간단히 들어보았다.

1) “앞으로도 볼 일 없는 작품” (전 애니메이터 PD ‘H’)
Q. 전 시리즈 시청하였나?
- 전 시리즈가 아니라 단 한 회도 시청하지 않았다. 

 

Q. 그래도 내용은 아실텐데, 무엇이 문제인지
- 배우 라인업만 두고 보자면 가히 장님이 캐스팅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이다. 원작과는 달리 흑인으로 등장하는 ‘제트’는 그나마 괜찮았다고는 평가한다. 

 

Q. 본인이 생각하는 적합한 라인업이 있다면
- 스파이크 역에는 국내 배우 ‘김수현’이나 ‘김우빈’이 어울릴 것 같다. 제트는 와일드하게 ‘드웨인 존슨’, 페이는 특유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한소희’가 어떨까.

 

Q. 10점 만점에 몇 점?
- 3점, 많아야 4점. 그 이상은 없다.

 


2) “작품 내 최고 캐스팅은 ‘웰시코기’” (크리에이터 ‘S’)

Q. 작품을 시청하셨는지.
- 1화까지는 간신히 시청했다.

 

Q. 스토리 전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 1화 밖에 보지 못해서 전개라는 관점에서 의견을 내놓기는 불가능하다. 그나마 웹상에 올라와 있는 정보를 확인해보자면 원작 그대로 재현하고자 한 것 같은데, 글쎄.

 

Q. 캐스팅은 만족스러운가.
- 실사 작품이 성공하려면 단독으로 살아 숨 쉬어야 할텐데.. 원작과 비교하면 그 역시도 할 말이 없다. 극 중 아인으로 등장하는 개(웰시코기)의 캐스팅 정도는 다행이라 생각한다. 루머에는 다른 견종이 등장한다는 말도 있었기 때문이다. 

 

Q. 점수를 메긴다면?
- 10점 만점에 4점. 그나마 원작의 느낌을 살려보려는 시도에 대한 최소한의 가산점이 더해졌다.

 


3) “시즌2 제작 폐기 결정에 박수를” (저널리스트 ‘O’)

Q. 질문을 바꾸겠다. 작품을 증오하는지.
- 그렇지는 않다. 정주행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띄엄띄엄 봤고, 나름의 호평도 했다.

 

Q. 호평이라고 하시는 점은.
- 주인공 ‘존 조’의 열연, 그리고 시즌2를 취소를 빠르게 결정한 넷플릭스 측의 통찰력.

 

Q. 호평이 아니지 않은가.
- 이 작품을 나만큼 시청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정도의 노력 감내한 후 의견이다. 존중해주길 바란다.

 

Q. 그렇다면 진중하게.. 평점을 부여한다면?
- 1점.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넷플릭스 구독을 중단하고 기대감만 간직하고 싶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돌아보면 실사화 소식을 듣고 너무 설레지 말았어야 했다는 뒤늦은 후회가 크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은 더 큰 실망으로 다가오고 말았다. 나 역시 작품을 재생하기 전의 기대감과 흥분만 남겨두고 다른 기억과 감정은 지워버리고 싶다. 같은 날 공개된 '지옥'은 전 세계 1위를 기록했지만, '카우보이 비밥'은 나에게 지옥을 선사했다. 

그러나 마냥 비판만 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이런 경험을 초석 삼아 더 발전적인 애니메이션 실사화 작품을 만날지도 모르겠다는 미련한 기대를 한다. 그리고 누군가 ‘카우보이 비밥’을 다시 실사 제작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을 해본다.

 

 

Editor: 안지상

 

 

- 이글은 2022년 1월 25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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