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글은 2021년 8월 16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기사'입니다. -
할리우드의 거대 영화사 ‘MGM’을 인수하며 세를 불리고 있는 OTT 플랫폼의 라이징 스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가 최근, 국내외 덕후들의 심장에 불을 질렀다.
일본에서만 개봉했던 애니메이션 ‘신 에반게라온:||(이후 ’에바 리피트‘로 표기)’가 ‘프라임 비디오’에 8월 13일 독점 공개된 것이다.
1995년 세상에 처음 공개되어 세기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지난 27년간 ‘오타쿠 문화’를 선도했던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기념비적인 이 작품은 ‘팬데믹’과 ‘반일정서’가 고조된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로 인해 국내에선 개봉이 불발됐었다. ‘에반게리온’의 아버지인 ‘안노 히데아키’ 감독은 “코로나 영향 하에서 극장 공개가 극히 제한적이던 중 해외의 팬 여러분께 가능한 한 빠르게 작품을 전달해 드리고자 제일 나은 방법이 무엇인지 깊이있게 고민한 후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통해 스트리밍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라고 전하며 “극장 개봉을 전제로 제작한 작품이기에 가능한 큰 화면으로 시청해주기를 희망합니다”라는 코멘트를 더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에바 리피트’의 독점 공개에서 놀라운 점은 ‘프라임 비디오’가 아직 국내에 정식 서비스 런칭을 하지 않은 시점에서 ‘한국어’를 지원한다는 사실이다(심지어 자막뿐 아니라 ‘더빙’까지 지원한다!). ‘프라임 비디오’에는 현재 일부 한국어를 지원하는 콘텐츠가 스트리밍되고 있지만, ‘넷플릭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 와중에 ‘에바 리피트’를 이용해 한국의 ‘덕후’들을 노리고 있는것이다. 게다가 ‘에바 리피트’와 함께 기존의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3부작인 ‘서’ ‘파’ ‘Q’도 함께 독점 공개되어 덕후들의 심장에 정조준 되어있는 ‘프라임 비디오’의 큰 그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미있게도, 오리지널 T.V판 시리즈인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초창기 극장판 2편은 현재 ‘넷플릭스’에서 인기리에 스트리밍 중이다. 경쟁사인 두 OTT 회사가 하나의 IP를 나누어가진 것이다. 그만큼 현재 OTT에서의 콘텐츠 수급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레트로 아니메 마니아들에게는 ‘에반게리온’ 보다 더 절대적인 ‘신앙’에 가까운 ‘우주세기 건담’의 최신작인 ‘섬광의 하사웨이’ 또한 ‘넷플릭스로 직행했다. 7월의 시작과 함께 넷플릭스에서 바로 개봉한 ‘섬광의 하사웨이’는 3부작으로 예정된 ‘우주세기’의 작품으로 레트로 마니아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VHS, LD, DVD 같은 여러 가지 ‘물리 매체’의 옷을 입고 혼재되었던 20세기의 레트로 아니메(일본 애니메이션) 영상 콘텐츠들과 그 브랜드의 새로운 콘텐츠들이 이제 ‘OTT(Over The Top)’ 시대를 맞이하여 딱딱한 옷 대신 부드러운 날개옷을 달고 무한의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넷플릭스’, ‘프라임 비디오’와는 결이 다른 ‘유튜브’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현재 ‘반다이’가 운영 중인 글로벌 건담 포털 사이트 ‘건담인포’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1988년 작 극장판 ‘샤아의 역습’이 무료로 스트리밍되고 있다. 비록 FHD급 화질은 아니지만, HD(720p) 화질로 모바일 기반의 디바이스에서는 충분히 또렷한 화질로 시청이 가능하다.
이전에도 ‘건담인포’ 유튜브 채널에선 일정 기간 한정으로 ‘건담 영상’이 스트리밍되곤 했다. 물론 대부분 ‘프라모델’ 판매를 위한 프로모션의 성격이 짙은 ‘건담 빌드’ 시리즈 같은 T.V판 콘텐츠 위주였으나 ‘샤아의 역습’은 그 결이 좀 다르다. 1988년에 극장 개봉 이후, VHS, LD, DVD는 물론 최근에 ‘리마스터판’까지 ‘블루레이’의 경우는 두 번이나 재탕해도 잘 팔리는 팬덤이 확실한 ‘레트로 명작 아니메’ 작품군 중 하나다. 굳이 그것도 무료로 풀 이유가 없는 콘텐츠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OTT라는 날개옷을 입혀서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변했다. 작년 초, 철저한 아날로그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유명한 ‘지브리’의 간판 작품들이 대거 ‘넷플릭스’를 통해 스트리밍되기 시작했다.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오픈과 동시에 큰 사랑을 받으며 지금도 여전히 인기리에 스트리밍 중이다. 관계자에 의하면 넷플릭스가 지브리에 지불한 판권료는 무려 우리 돈으로 ‘2조 원’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세상 모든 영상이 OTT를 통해 스트리밍되어도 DVD 플레이어에 디스크를 넣고 ‘재생’ 버튼을 눌러야만 볼 수 있는 최후의 ‘아니메’일 것만 같았던 ‘지브리’의 작품들마저 이젠 지하철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 지브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팬들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평소 지브리의 수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디지털 기기에 손가락을 문지르는 모션을 혐오스럽다고까지 말하던 사람이다. 그런 그의 작품들을 이제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이제 세상의 모든 영상 콘텐츠는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가 되어 무한의 공간을 날아다니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말이기도 하다.
몇 년을 주기로 항상 새로운 굿즈를 더해서 ‘한정판’으로 팔아도 계속 팔리는 것이 레트로 아니메 프랜차이즈의 작품들이다.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에 충성도 있는 ‘덕후’를 거느리고 있는 아니메 명작들이 이제 모두 OTT행 열차에 차례로 올라타고 있다. 그 배경이 ‘돈’이든 ‘프로모션’이든 간에 이제 그리운 유년 시절의 추억은 모두 OTT에서 리마스터링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에 ‘프라임 비디오’에서 ‘에바 리피트’를 스트리밍한 사건?은 사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일 뿐이다. 오히려 아직 국내에서 ‘그랜드 오픈’조차 하지 않은 ‘프라임 비디오’에서 ‘자막’과 더불어 ‘한국어 더빙’까지 진행한 것에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정식 오픈’이란 형식조차 필요치 않은 국경 없는 세상을 향한 그들만의 쿨한 인사법에 당황하지 않고 화답해 주는 센스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예전 우리네 1세대 덕후들은 일본에서 개봉한 ‘아니메’를 보기 위해 일본에서 비디오로 풀리기를 1년간 기다렸다가 그걸 몰래 들여온 업자에게 개당 오천 원에서 만원을 지불하고 다시 비디오로 복사했다. 당연히 자막이 없어서 디테일한 내용은 알 길이 없었고 화질은 별로였다. 그렇기에 기성세대에게 지금 유튜브에서 자막을 지원하는 ‘샤아의 역습’과 개봉 몇 개월 만에 더빙을 지원하는 ‘에반게리온’을 누워서 스마트 폰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은 아직 생소하기만 하다.
어쩌면 두려운 건지도 모른다.
너무 편해지면 소중해지지도 않을테니까...
- 이글은 2021년 8월 16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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