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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 1992년의 ‘레트로 감성’으로 만든 2092년의 SF 우주 활극!

기획

by RetroT 2023. 6. 1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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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2021년 2월 15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기사'입니다. -

“승리호”, 1992년의 ‘레트로 감성’으로 만든 2092년의 SF 우주 활극!


난리가 났다.


‘승리호’는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개봉이 기약 없이 미루어지다가 결국 붙잡은 ‘넷플릭스’라는 동아줄로 기사회생한 것에 더해서, 얼떨결에 ‘전 세계에 ‘한류’ 어퍼컷을 날리며 ‘애국 영화?’ 타이틀까지 얻게 되었다.

2월 5일 넷플릭스 공개 직후부터 쏟아진 반응은 가히 폭발적. 2일 만에 해외 28개국에서 1위, 80개국 이상에서 Top10 진입이라는 성적표를 제출하고 일찌감치 ‘왕좌’에 앉아서 모두를 내려다보게 된 것이다. (지금은 순위가 조금씩 내려가고 있다)

사실 매우 많은 사람이 한국에서 우주 SF? 스페이스 오페라? 라며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한국 영화의 VFX 수준과 대중에게 어필하는 우리만의 연출과 감성 그리고 캐릭터는 세계인들에게 먹히는 ‘그것’이었던 셈.

 

‘킹덤’ ‘스위트 홈’에 이어 또다시 ‘국뽕’으로 온 국민을 업 텐션 컨디션으로 만든 장본인인 ‘조성희’ 감독은 이 영화에 많은 ‘8090 오마주 코드’가 깔려있음을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레트로한 SF 우주 활극’이라는 것이다. 또한 재미있게도 실사 영화이지만, ‘애니메이션’에서 많은 모티브를 찾을 수 있다. 작품을 보면 기시감이 느껴지는 장면과 분위기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표절’이나 ‘아류’라는 꼬리표는 붙일 수 없는 독자적인 색깔을 가진 창작품으로 탄생해서 더욱 신기하다. 이 지면에서는, ‘승리호’에서 어디서 본 듯하지만, 쉽게 지나쳐 버린, 애니메이션에서 영향을 받은  ‘레퍼런스 & 레트로 코드’를 찾아서 나열해보겠다. (스포일러 주의)

레트로 SF 우주 활극:
승리호

1.
‘승리호’에서 하층민(비시민권자)이 사는 지구와 UTS 시민권자들이 사는 지구 위성 궤도의 관계는 그 유명한 ‘총몽(銃夢 1990년 만화 원작)’에서 모티브를 찾을 수 있다. 총몽에서의 ‘자렘’은 ‘UTS’로, 우주 쓰레기를 찾아 헤매는 승리호 주인공들은 자렘 밑에서 자렘이 내려보내는 고철들을 들추며 살아가는 인생들로 대입해 볼 수 있다.

 

또한 한때 자렘의 시민이었던 ‘이도’가 자렘에서 버려진, 엄청난 잠재력의 ‘사이보그 소녀’를 발견한다는 설정은 사실상 ‘승리호’의 태호와 꽃님이의 관계와 거의 유사하다. 감독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렇듯 ‘승리호’의 가장 큰 모티브의 줄기는 거의 ‘총몽’에서 가져온 것이다.

총몽의 '자렘(상), 승리호의 UTS (하)

 

2.
지구 위성 궤도의 UTS 시민 거주지의 비주얼적인 모티브 역시 일본 애니메이션인 ‘건담(1979년)’의 스페이스 코로니 그리고 ‘마크로스 프런티어(2008년)’의 초대형 이민 선단에서 찾을 수 있다. 건담의 스페이스 코로니는 원래 1975년 미국의 물리학자 ‘제러드 오닐’의 학술발표를 근거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주로 SF 콘텐츠로서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건담에서는 오닐의 주장에 기초하여 원통형으로 ‘스페이스 코로니’를 표현하고 있지만, 마크로스는 ‘승리호’의 그것처럼 평면으로 되어있다.
이 둘을 적절하게 합치면 승리호에서의 UTS 시민 거주 구역처럼 완성된다. 시각적으로 투명한 배리어 안에 쌓여있는 푸른색과 초록색의 우주 도시 이미지를 최초로 만든 애니메이션이 바로 ‘건담’이며, 영화 인터스텔라에도 오닐과 ‘건담’의 스페이스 코로니로부터 영향을 받은 장면이 등장한다.

 

건담의 스페이스 코로니(상), 마크로스 프론티어의 이민선단(중), 승리호의 위성궤도 내 UTS 시민거주구역(하)

 

3.
누가 뭐래도,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현시대의 젠더 감성을 탑재한 개성 강한 ‘업동이’다.

 

작중 가장 창조적인 개성의 캐릭터이지만, 이 역시 닮은꼴 선배가 숨어있다. ‘업동이’는 ‘승리호’ 갑판에서 직접 작살을 던져 우주 쓰레기를 고정해 끌어오거나 적과 싸우는데, 이건 ‘우주의 기사 테카맨(1975년)’에서 그 모티브를 찾을 수 있다. 80년대에 국내에서는 ‘철갑인’이라는 VHS 비디오로 제작 유통되어 엑스 세대들 중에서는 아직도 이 작품을 기억하는 이들이 꽤 있다.

 

원작에서 주인공 테카맨은 페가스라는 작은 우주선을 타고, 양쪽으로 날이 서 있는 창을 이용하여 적과 싸운다. 이 창을 휘두르며 적 우주선을 찌르고 자르고 때로는 던지기도 하는데, 이때 철로 된 채찍을 이용해 창을 회수하는 장면은 영락없이 ‘업동이’의 액션과 똑같다. 최첨단의 우주 시대에 광선 총도 아니고 번쩍번쩍 빛나는 제다이 검도 아닌 무식하게 생긴 은색 창을 던져 적과 싸운다는 이 무모하고 아날로그 한 이미지를 이미 45년 전에 일본에서 멋지게 영상화했었다니 놀랍고 쿨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러 가지 설정상, 시대를 너무 앞서간 ‘테카맨’은 일본에선 흥행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는데 45년 뒤에 ‘승리호’가 이 모티브를 더 힙하게 잘 살려내어 대박을 친 셈이다. 덧붙이자면, ‘테카맨’도 ‘승리호’처럼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야만 하는 숙명 앞에 놓인 인간들의 어두운 이야기를 기본 설정으로 하고 있다.

테카맨과 페가스(상), 승리호의 업동이(하)

 

4.
‘총몽’과 함께 ‘승리호’ 이야기에 일정 부분 영향을 준 작품은 바로 세기의 명작 ‘아키라(1988년)’다.

 

초능력 인간병기 개발을 목적으로, 순수한 에너지를 증폭시킬 힘을 가진 선별된 아이들에게 “E.S.P 프로젝트‘ 를 시행하여, 인간 병기화 한다는 설정을 가진 ’아키라‘ 의도치는 않았지만, 나노봇을 주입받아 반신반인이 되어 버린 ’꽃님이‘는 ’아키라‘의 소년들과는 반대로 생명과 자연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이 과정에서 죄 없는 아이들이 거대한 조직에 잔인하게 이용당한다는 점은 같다.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서 80년대 후반 이후에 제작되는, 아이들이 초능력을 가지게 되는 모든 콘텐츠는 이 작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2018년에 개봉했던 국내 영화 ‘마녀(박훈정 감독)’는 승리호’보다 더욱 진한 아키라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다.

 

아키라의 테츠오 수술장면(상), 승리호의 꽃님이 수술 전 장면(하)

 

5.
또한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생명 존중, 생명 중시’의 세계관에 영향을 받았으며 파편적으로 그 모습들이 드러난다. 그의 작품 중 ‘붉은 돼지(1992년)는 군국주의자들 속에서 ‘파시스트’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돼지’로 살겠다는 주인공 포르코가 붉은색 비행기를 조종하며 공적들과 외롭게 싸우는 이야기이다.


마찬가지로 UTS에서 에이스 살인 병기였던 ‘김태호’가 어느 순간부터 더는 사람들을 죽이지 못하고 결국은 붉은색 청소 우주선인 ‘승리호’의 조종사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서사는 포르코의 감성과 거의 같다. (장 선장의 캐릭터에 대입해 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바람의 계곡의 나우시카’, ‘월령공주’등에서 드러나는 미야자키 특유의 주제 의식과 미장센도 승리호 전반에 짙게 깔려 있다.

 

훼손된 자연을 다시 회복시키는 상징으로 표현되는 나우시카, 사슴신은 ‘꽃님이’를 연상시킨다. 똑같이 1대1로 대입되는 이미지는 없지만, 자연과 생명을 존중하고 회복시키는 작은 개인들의 모험 서사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진정성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붉은돼지의 포르코와 그의 전투기(상), 승리호와 김태호(하)

 

마지막으로, ‘승리호’라는 제목은 어떤 의식의 흐름으로 만들어졌을까? 를 감독 대신 고민해 보며 이글을 마치고자 한다.

 

‘조성희’ 감독은 1979년생이다.
유년 시절인 80년대에 T.V 와 VHS 비디오를 통해 ‘애니메이션’을 접했던 ‘엑스세대’이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던 ‘아날로그’ 시대였기 때문에 넓게 보면 70년 대생 전체가 같은 유년 시절의 기억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다 똑같은 ‘로보트 태권브이’ 세대이며 다 똑같이 T.V를 통해 반복해서 방송되는 ‘성룡’영화를 보며 자랐던 세대이기에 ‘공통의 기억’이라는 것이 주입된 세대이다.

 

엑스세대

 

79년에 개봉했지만 80년대 내내 방송되며, 비디오를 통해 유통된 ‘김청기 감독’의 ‘은하함대 지구호’, 76년에 TBC를 통해 첫 방영이 되었지만 역시나 80년대에 아카데미 과학사의 ‘프라모델’과 비디오로 많은 인기를 끈 ‘달려라 번개호’, 80년에 MBC를 통해 방영되었고 역시나 80년대 내내 장난감으로 인기를 끌었던 ‘날으는 우주 전함 브이호’

 

이 밖에도 ‘날아라 태극호’ ‘이겨라 승리호’같은 애니메이션들이 70~80년대에 유년 시절을 보냈던 이들에게는 굉장히 일상적이며 상식적인 ‘애니메이션 제목’이었던 것이다.

은하함대 지구호 포스터(상), 달려라 번개호 프라모델 박스 아트(하)

젊은 관람객 측에게는 ‘승리호’라는 제목이 굉장히 유치한 네이밍 센스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엑스세대 이상의 기성세대에게는 어쩌면 잊진 유년 시절의 추억을 소환시키는 마법의 주문 같은 제목이다.

‘조성희’ 감독의 의식의 흐름 속에서 ‘승리호’라는 제목이 튀어나온 것은 어쩌면 그가 영화 전반에 걸쳐 사용한 많은 옛날 물건들로 미루어 보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지구호, 브이호, 태극호, 번개호
그리고 드디어 

승리호

‘꽃님이’ ‘업동이’ ‘순이’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이름들이다. (심지어 한글이다.)
2092년의 초고성능 우주선인 ‘승리호’에는 왠지 경유를 태우거나 석탄을 때야 내연기관이 돌아갈 것처럼 생긴 ‘엔진실’이 있다.
그 외에도 실로폰, 한글 노트, 화투, 현금 돈다발 등.... 수없이 많은 아날로그향 짙은 소품들이 등장해서 다 나열할 수도 없다.

 

업동이의 현금 보관함(넷플릭스 영화 '승리호' 캡쳐)

감독이 제목을 ‘승리호’라고 지은 것은 어쩌면 자신 안에 있었던 거부할 수 없는 레트로 소울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어린 시절 보고 듣고 만지며 자라온 여러 가지 ‘~호’에 이제 자신만의 ‘승리호’를 더해 그 시절 전설들 속에 함께 하고 싶었는지 ...

 


 

아니, 어쩌면 온전하게 우리만의 ‘~호’가 없었던 슬픈 시절의 상처를 스스로 꿰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추억하는 일기장 같은 작품일지 감독 자신만 알고 있을 테지만...

확실한건 그가 ‘레트로 마니아’라는 사실이다.

 

 

- 이글은 2021년 2월 15일에 작성된 '레트로 타임즈'의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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